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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속으로

기도의 비결-하나님의 마음을 여는 열쇠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7. 17.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태복음 7:8)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명의 호흡이요,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어가는 생명의 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기도는 하지만, 정작 기도의 능력이나 응답을 경험하지 못하고 낙심합니다. 기도를 해도 막힌 듯하고, 열심히 외쳤지만 하늘이 잠긴 듯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
’이나 ‘열심’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비결’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문을 여는 열쇠를 찾지 못하고, 그저 닫힌 문 앞에 서서 허공에 손을 뻗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열쇠 없이 자물쇠를 억지로 돌리려는 사람처럼, 많은 이들이 기도의 원리와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기도에 실패합니다. 어떤 이는 마치 크기가 같은 책상을 문으로 통과시키려 하지만 계속 걸려 넘어지는 사람처럼, 기도의 방법은 같아 보여도 핵심적인 차이에서 응답받는 기도와 그렇지 못한 기도가 나뉩니다. 그 차이는 ‘
비결’입니다. 곧,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의 지혜입니다.

아브라함의 간구는 하나님의 성품을 붙드는 기도입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장면을 봅니다. 아브라함은 단지 감정에 이끌려 “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겠습니까?”라는 그의 질문은 단순한 호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근거로 한 논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는 분이지만, 결코 의인을 무시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확신이 그의 기도에 담겨 있었습니다.

기도의 비결은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과 성품에 부합되는 간구입니다. 아브라함은 열 명의 의인을 찾는 선에서 멈췄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던 믿음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결코 부당하게 행하시지 않는 분이라는 신뢰로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의인 롯은 멸망에서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공의는 온전히 나타났습니다.

여호수아의 간구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기도입니다. 아이성에서의 실패 후,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단지 전쟁에서의 패배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염려했습니다.
“주님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라는 기도는 자신의 실패를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에 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으시고, 패배의 원인이 이스라엘 진영 안의 감추어진 죄 때문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때로 죄의 폭로라는 방식으로 오기도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 응답 앞에 순종하며 죄를 다루었고, 이스라엘은 다시 승리를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단지 내 필요의 해결, 내 감정의 위로를 구하는 데 머문다면, 응답은 지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중심이
“주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기를” 바라는 데 있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반응하십니다.

다윗의 간구는 문제의 원인을 묻는 기도입니다. 다윗 시대에 삼 년 동안 계속된 기근 앞에서, 다윗은 입을 열어 곧바로
“비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그 원인을 여쭈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기근을 허락하셨는지를 묻고 기다렸습니다. 그의 기도에는 핵심이 있었고, 그것은 곧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가?”였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한 과거의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셨고, 다윗은 그 문제를 철저히 다루었습니다. 그제야 비가 내리고, 땅이 회복되었습니다.

기도의 비결은 때로 문제의 뿌리를 찾는 정직한 기도입니다. 문제의 현상만 제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죄, 불순종, 악습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 앞에 서려는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빛이 임하고, 응답이 따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동시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완성입니다. 자신의 뜻도, 감정도 정직하게 토로하지만, 끝내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기도입니다.

진짜 기도의 깊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아뢴 후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들을 귀를 갖는 것. 이 기도는 결국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길로 이어졌고, 하늘에서의 응답과 십자가에서의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내 뜻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하나님의 뜻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본질이며, 비결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간청은 올바른 위치를 깨달은 기도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서 가나안 여인은 처음에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르짖으며 예수님께 나아왔지만, 주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방인인 그녀는 유대인의 메시아로서 예수님을 부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거절당하고 나서야 자신의 위치를 바로 잡습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제는 다윗의 자손이 아닌, 단순히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춘 것입니다.

그녀는 개라고 불리는 수치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말은 겸손한 믿음에서 나왔고, 주님은 감탄하셨습니다. “그대의 믿음이 크다!” 그녀는 자격 없는 자였지만, 올바른 위치에서 주님의 은혜를 구했기 때문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의 비결은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입니다. 자격 있는 자가 아닌, 오직 은혜를 입을 수밖에 없는 자로 서는 것입니다. 그때 믿음이 생기고,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여는 말이 됩니다.

기도는 단순히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안에 계신 주님께 귀 기울이는 일입니다. 감정에 따라 울고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휘둘려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영이 주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은 단지 표현의 도구일 뿐, 기도는 영 안에서의 느낌이 말로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도하는 자를 “
파수꾼”이라고 말합니다. 파수꾼은 깨어 있는 자요, 관찰하는 자이며, 그가 본 것을 외치는 자입니다. 이사야 62장은 이런 기도하는 무리를 “주야로 잠잠하지 않는 자들”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러한 기도의 무리를 찾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온전히 건축되고, 교회가 다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기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반응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기도의 비결은 하나님을 아는 데 있습니다. 기도의 열쇠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분의 성품, 뜻, 이름, 영광, 은혜, 거룩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그분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낮추고, 순종하며, 깊은 내면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기도의 비결은 특정한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안에서 발견되는 영적인 깨달음입니다.

기도가 막힌 것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께 묻기 바랍니다.
“주님,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무엇을 깨닫기 원하십니까?” 그리고 기다리십시오. 그분의 말씀이 임할 때, 내 영 안에서 “바로 그거야!”라는 응답이 들릴 것입니다.

이제 기도의 사람으로 일어나십시오.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오늘도 찾고 계신 한 사람, 한 무리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비결을 얻은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며, 세상을 바꿉니다. 그 기도의 자리에, 오늘 우리가 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