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3:42~43)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문 앞에 선 존재입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 문 앞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묻습니다. “죽음 이후에 정말로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죽은 후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이 물음은 곧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하는 신앙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내세(來世)가 존재한다면 그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흔히 ‘천국’이라 부르는 단어는 성경에서 Kingdom of Heaven 혹은 Kingdom of God, 즉 ‘하나님의 나라’로 번역됩니다. 천국은 단순히 죽은 뒤 영혼이 올라가는 하늘 위의 공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하셨고, 또 주기도문에서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천국이 현재적이며, 임하는 나라임을 보여줍니다.
천국은 지금도 성령 안에서 우리 가운데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완전한 모습은 예수님의 재림 때 드러납니다. 그날, 세상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즉, 천국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상태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그 나라를 미리 맛보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순간, 그분의 통치가 내 삶에 임하고, 내 안에 천국이 시작됩니다.
낙원은 구원받은 자의 ‘임시 거처’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의 강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여기서 ‘낙원’은 에덴 동산처럼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된 영적 공간을 의미합니다.
낙원은 천국의 완성된 상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부활의 날을 기다리며 주님과 함께 안식하는 곳입니다. 사도 바울도 “셋째 하늘에 이끌려 낙원에 이르렀다”(고후 12:4)고 증언합니다. 그곳은 하나님 임재의 빛 가운데 있는 평안의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 곁으로 옮겨지는 통로이며,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잠시 머무는 안식의 시간입니다.
음부는 불신자들의 고통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눅 16장)에서 두 사람의 죽음 이후의 상태를 보여주셨습니다. 거지는 아브라함의 품, 즉 낙원에 있었고 부자는 음부에서 불꽃 가운데 괴로워했습니다. ‘음부’는 영원한 지옥이 아닙니다. 심판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믿지 않는 자들이 고통 가운데 머무는 임시적 형벌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까지 그들의 영혼은 죄의 결과를 미리 맛보며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은 최종적인 멸망의 종착지입니다. ‘지옥(Gehenna)’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게힌놈(Ge-Hinnom)’에서 유래했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남쪽의 흰놈의 골짜기로, 과거에는 몰렉 신에게 자녀를 불태워 제사하던 장소였고, 후대에는 도시의 쓰레기를 태우는 곳이었습니다. 항상 불이 꺼지지 않았던 이 골짜기가 영원한 형벌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의 불”(마 5:22), “꺼지지 않는 불”(막 9:43)을 말씀하시며, 지옥은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곳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5:41).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분의 은혜 대신 자신을 의지한 자들은 결국 이곳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곳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끊어진 상태, 영원한 고통의 실재입니다.
무저갱은 타락한 천사들의 감옥입니다. 성경은 ‘무저갱(Abyss)’ 혹은 ‘타르타로스(Tartarus)’라 불리는 영적 감옥을 언급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사탄은 천년 동안 무저갱에 결박되어 가둬집니다. 이곳은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들, 곧 귀신들이 심판을 기다리는 장소입니다(벧후 2:4). 바닥이 없는 깊은 구렁, 하나님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의 감옥입니다.
내세를 진지하게 아는 사람은 결코 이 세상을 허무하게 살지 않습니다. 우리가 80년, 90년을 살아간다 해도 그것은 영원한 세상 앞의 짧은 ‘서론’에 불과합니다. 이 짧은 서론의 목적은 단 하나, 영원한 본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현세의 목적은 ‘이 땅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통치와 의가 내 안에 세워질 때, 삶은 비로소 목적과 방향을 얻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관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죽음을 지나 주님이 예비하신 낙원으로 들어가고, 그날이 되면 부활의 몸으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고백했습니다. 이 땅의 고난과 수고는 영원을 향한 작은 통로입니다. 내세를 아는 자는 오늘의 고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세의 확신이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내세가 없다면, 하나님은 필요 없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내세가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계셔야 하며, 그분 앞에 설 날 또한 반드시 옵니다. 따라서 내세에 대한 믿음은 현세를 가장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죽음 이후의 세상’을 바로 이해할 때, 비로소 ‘지금의 삶’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천국은 먼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안에 임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십시오. 그날 낙원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의 완성 속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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