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출애굽기 8:28)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이 짧은 한마디는 고대 애굽의 왕 바로가 모세에게 던진 말입니다. 그 말 속에는 겉으로 보기엔 타협 같지만, 속에는 교묘한 속셈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백성의 자유를 향한 도전을 막기 위한, 세상적인 흥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되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들을 완전히 놓아주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래, 제사를 드리려면 가라. 그러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즉, “완전히 떠나지는 말라. 애굽의 영향권 안에 머물러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단지 고대의 한 왕이 한 말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은 바로의 목소리를 빌려 여전히 우리 귀에 속삭이고 있습니다.
“너무 극단적으로는 살지 말아라." “믿음을 가지되, 세상과 어울릴 줄도 알아야지.” “예배는 드리더라도 재미도 좀 있어야지.” “말씀을 지키되 너무 고지식하게 굴지 말아라.”
이것이 바로 현대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는 유혹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까지는 허락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찬양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겠다고 하면 곧 비난과 조롱이 시작됩니다. “너무 독선적이야.” “너무 보수적이야.” “너무 멀리 갔어." 하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려면 우리는 반드시 “너무 멀리 가야” 합니다. 세상이 허락하는 거리 안에서는 결코 거룩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결코 우리를 완전히 놓아주지 않습니다. 바로는 결코 이스라엘을 완전히 놓아줄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가 말한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는 말은, 이스라엘을 여전히 자기 통제 아래 두려는 술책이었습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교회 안에서도 세상과 타협하게 만들고, 신앙 안에서도 자기 방식을 따르게 만듭니다.
세상은 신앙을 조롱하면서도, 그 신앙이 세상과 ‘적당히 섞여 있는 것’은 반깁니다. 왜냐하면 그런 신앙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상에 이용당하고, 타협하며, 영향력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멀리 가야 얻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광야에서 나를 섬기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광야는 애굽과 멀리 떨어진 곳, 세상의 문화와 가치가 미치지 못하는 ‘분리의 자리’입니다. 그곳은 불편하고, 외롭고, 때로는 고난이 있는 곳이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임했습니다. 만나가 내렸고, 반석에서 물이 터졌으며, 하나님의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분의 백성을 ‘광야로’ 부르십니다. 세상의 논리와 즐거움, 타협의 땅을 떠나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는 자리로 부르십니다.
타협은 결국 멸망을 부릅니다. “그 도시에 불이 붙을 때, 그 안에 머무는 자의 집도 함께 타고 말 것입니다.” 이 경고는 소돔의 이야기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세상에 발을 반쯤 걸치고 있는 신앙은 결국 함께 불타게 됩니다. 세상과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 죄의 냄새와 독기가 우리 안에도 스며듭니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 감염되지 않으려면 멀리 떨어져야 하듯이, 세상의 가치관과 쾌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언제나 “멀리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언제나 세상에서 멀어지는 길입니다. 그 길은 광야 같고, 십자가의 길이며, 세상에 속하지 않은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 길을 끝까지 간 자들은 세상의 박수 대신
하늘의 상을 받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됩니다.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고후 6:17) 우리는 타협의 땅을 떠나야 합니다. 애굽의 풍요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택해야 합니다. 광야의 외로움보다 세상의 편안함을 택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제는 ‘너무 멀리’ 가야 합니다. 그 길의 끝에 진정한 자유와 거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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