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 곳에서 떠나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시리라’ 하되 그 사위들은 그가 농담하는 것으로 여겼더라.”(창세기 19:14)
어느 날 병원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합니다.” 그 말을 듣고도 누군가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에이, 의사 선생님이 너무 과장하시는 거죠. 어제도 멀쩡했는데요.” 그 사람은 그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닙니다. 알아들었지만 실감하지 않은 것입니다. 위험을 농담으로 만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소설과 동화로도 반복해서 소비되었습니다. 그만큼 익숙합니다. 그리고 익숙한 것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익숙함은 경외를 지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소돔과 고모라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그 음란한 도시 말이지.” “타락해서 벌 받은 곳.” 하지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진짜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천사들은 롯에게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 성은 곧 멸망한다. 지금 떠나라.” 롯은 그 말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서두르게. 이 성을 빠져나가야 하네.” 그러나 사위들은 웃었습니다. 성경은 짧고도 냉정하게 기록합니다. “그의 사위들은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무신론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 말씀이 현실이 될 거라고 믿지 않았을 뿐입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은 장면이 반복됩니다. “인생은 유한합니다.”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다 맞는 말이긴 한데… 지금은 너무 바쁘잖아요.” 농담처럼 흘려보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돔과 고모라를 “저런 이방 도시니까 그렇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일부러 비슷한 이야기를 한 번 더 반복합니다. 사사기 19장, 이스라엘 땅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나그네를 보호하지 못하고 자기 욕망을 위해 타인을 해치는 모습, 심지어 제사장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조차 소돔과 동일한 장면이 재현됩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은혜를 잃은 이스라엘은 소돔과 다를 바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이 사람을 자동으로 거룩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을 때, 선민도 소돔이 됩니다.
놀라운 장면이 있습니다. 롯 역시 꾸물거렸습니다. 그 역시 지체했습니다. 그 역시 완벽한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살아났습니다. 사위들은 죽고,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는데, 왜 롯은 살아났을까요?
성경은 이유를 분명히 말합니다. “주님께서 롯의 가족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이다.” 롯은 믿음이 좋아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결단이 빨라서 살아난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중보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복음이 열립니다. 우리가 살아난 이유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아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붙잡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를 정말 ‘실재’로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신앙 언어로 포장된 농담처럼 소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베드로는 말세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다시 오신다더니, 어디 계시냐?”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잖아.” 이 말은 불신앙의 언어가 아닙니다. 지연된 심판을 근거로 안심하는 언어입니다. 마치 아이가 말하듯이, “아직 안 혼났으니까 괜찮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어차피 이 세상은 다 불타 없어질 텐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하나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말은 완전히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불순물이 제거되어 본래 모습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금이 불을 통과하면 사라집니까? 아닙니다. 더 순수해집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회복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세상을 대충 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에게 이런 소망을 두는 사람은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 소망은 사람을 나태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소망은 사람을 정결하게 만듭니다. 진짜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믿는 사람은 지금의 삶을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삶이 그 나라와 끊어진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소돔 사람들은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믿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가볍게 여겼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선택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좋은 종교 언어로 남겨 둘 것인가, 아니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실재로 받을 것인가, 소돔은 도시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농담처럼 사는 태도, 지금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태도입니다.
성도는 다릅니다. 비록 더디고 연약해도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성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소돔의 멸망은 죄악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긴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하니…”(베드로후서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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