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사람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으로 그의 손과 그의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라”(창세기 19:16)
성경은 롯을 분명히 ‘의인’이라 부릅니다. 베드로후서 2장은 소돔의 불의한 행실로 인해 괴로워하던 롯의 마음을 증언합니다. 그는 악을 악으로 인식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타락한 도시의 죄를 즐긴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의 삶은 끝까지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았으나,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입니다.
롯의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에서 비롯되었지만, 그의 삶은 끊임없이 세상의 문턱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던 모습은 그가 단순한 나그네가 아니라 그 도시의 질서와 가치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마음으로는 괴로워하면서도, 발걸음은 여전히 그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롯과 아브라함의 갈림길은 창세기 13장에서 이미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풍요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선택했고, 롯은 눈에 좋아 보이는 땅을 택했습니다. 그 선택은 즉각적인 파멸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롯은 물질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렸고, 아브라함은 약속만 붙든 채 장막을 옮겨 다녔습니다.
그러나 선택은 사건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롯의 선택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점점 더 소돔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처음에는 가까이 장막을 쳤고, 다음에는 성 안에 거주했으며, 마침내 성문에 앉는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작은 선택들이 쌓여 그의 삶의 궤적을 만들었습니다.
소돔의 멸망은 롯의 삶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는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간신히 성을 빠져나왔습니다. 성경은 그 장면을 ‘불 가운데서 얻은 구원’으로 묘사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생명만은 건졌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은 승리의 행진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고, 두 딸과 함께 들어간 동굴은 새로운 비극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롯의 가정사는 구원의 감격보다는 상실과 부끄러움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끝까지 장막에 거했습니다. 그는 이 땅에 영구히 정착하지 않았고, 약속의 성을 바라보는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반면 롯은 성문에 앉았습니다. 장막은 떠날 준비가 된 삶을 상징하고, 성문은 이 땅에 뿌리내린 삶을 상징합니다. 이 대비는 단순한 인물 비교가 아니라, 믿음의 두 방향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아직 보이지 않는 나라를 향해 걷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안전과 인정 속에 머무르려는 삶입니다.
롯의 이야기는 정죄를 위한 본문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삶을 통해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구원 이후, 너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믿음은 한 번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방향이며, 매일의 선택 속에서 드러납니다. 우리는 소돔을 미워하면서도 그 성문에 앉아 있지는 않은지, 마음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면서도 발걸음은 여전히 이 땅의 안락을 향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롯을 불 가운데서 건져 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단지 생명의 보존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의 방향이었습니다. 구원은 출발점이지 종착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롯의 이름을 통해 안도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이야기는 우리를 깨어 있게 합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장막인가, 성문인가,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이 길을 걷고 있는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신앙을 넘어, 구원에 합당한 방향으로 살아가는 삶이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무거운 초대인 것입니다.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베드로후서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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