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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다윗과 우리아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8. 10.

렘브란트, <다윗과 우리아>, 1665,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사무엘하 11:2~6, 13~15)

렘브란트는 젊어서부터 출중한 실력으로 화가로서의 명성과 경제적 부를 쌓았습니다. 스물두 살 때 이미 그의 공방에는 그림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서양미술사를 통들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장으로 렘브란트를 꼽을 만큼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들을 추앙합니다.

하지만, 화가의 걸작과 화가의 삶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렘 브란트의 삶은 중년으로 갈수록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내 사스키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네 명의 자녀 중 막내 티투스만 살아남고 어린 나이에 모두 세상을 등졌습니다. 심지어 사랑했던 아내 사스키아도 서른이라는 꽃 같은 나이에 지병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이제 렘브란트에게 남아 있는 사람이라 곤 집안일을 돌봐주던 헨드리케 뿐입니다. 헨드리케는 기꺼이 렘브란트의 아내가 되어주었고, 또 그의 모델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렘브란트의 불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나이 쉰 살 무렵 가세가 기울면서 파산에 이르러 살던 집까지 경매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헨드리케와 막내아들 티투스마저 병으로 세상을 뜨자 그는 깊은 절망과 고독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습니다. 렘브란트는 예순세 살에 삶의 회한을 뒤로 하고 영면했습니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파산하고 헨드리케 마저 잃었을 당시 그린 작품입니다. 화가의 불행이 다윗의 슬픔으로 전이되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다윗왕은 전쟁터에 나간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욕정이 생겨 그녀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덜컥 임신을 시키고 말았습니다. 다윗왕은 자신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전쟁터에 있던 우리아를 집으로 돌아오게 명한 뒤 밧세바와 자도록 유도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아는 부 하들이 전쟁터에 있는데 자기만 집에서 편하게 쉴 수 없다며 왕궁 바닥에서 자고 전쟁터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왕의 계략이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왕은 우리아를 가장 위험한 전쟁터로 보내 그를 죽게 했습니다.

사무엘하 11장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주제인데, 화가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밧세바의 여체를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달랐습니다. 그는 사무엘하 11장을 읽고 깊은 묵상 끝에, 우리아가 자신의 운명을 인지하고 제물이 됨을 받아들이는 장면으로 그렸습니다. 우리아의 핏빛 옷은 그가 곧 죽을 운명을 암시합니다. 그의 얼굴과 손에 쏟아지는 빛은 하 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처럼, 다윗왕의 죄악을 대신 지고 제물이 된 우리아 뒤의 어둠 속에 다윗 왕이 초라한 눈빛으로 앉아 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로마서 3:25)

다윗의 죄는 단순히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권력과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낸 죄악이었고, 한 사람의 충성과 생명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허물을 가리려 했던 치명적인 타락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아의 운명 속에서 복음의 한 단면을 보게 됩니다. 그는 결백했으나 왕의 죄로 인해 죽음의 자리로 내몰렸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제물처럼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우리아의 모습은, 죄 없으셨으나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우리아의 얼굴 위로 쏟아지는 빛은, 인간의 부당함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이 역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아가 죽음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비극이지만, 그 빛은 하나님께서 그 억울함을 잊지 않으시고, 정의와 구속으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증언합니다. 다윗의 어둠과 우리아의 빛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죄의 어둠과 구원의 빛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로마서 3장 25절은 말합니다. “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우리 모두는 본질상 다윗과 같아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애쓰며 누군가를 희생시킬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어둠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내어주셔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다윗의 자리에 있던 우리가 이제는 빛 가운데 서게 된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희생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며 두려움과 감사로 서야 합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죄가 얼마나 깊고 파괴적인지를 깨닫는 데서 오고, 감사는 그 죄를 덮으신 하나님의 은혜에서 옵니다. 이 은혜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이의 생명을 내 죄를 가리기 위한 제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산 제사로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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