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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소년 사무엘의 기도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8. 7.

조슈아 레이놀즈 경, <기도하는 소년 사무엘>, 1777, 프랑스 몽펠리에 파브르 미술관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 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여호와께서 임 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 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 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사무엘상 3:3~5, 8~11)

우리가 보통
'소녀의 기도' 라고 알고 있는 이 그림의 주인공은 소녀가 아니라 이스라엘 최후의 사사이자 최초의 선지자인 사무엘입니다.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 경이 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 영국에서는 소년도 어렸을 때는 여자아이처럼 옷을 입고 머리를 기르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레이놀즈는 이 그림에서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지혜의 화신으로서 진리의 빛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소년 사무엘을 젊은이들의 표본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 그림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자체로 기도가 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레이놀즈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 인물을 그려 넣는 렘브란트풍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아울러 독특한 주제 해석 능력으로 색조와 빛과 구도에 자신만의 감성을 더했습니다. 그는 경건한 분위기에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조화시켜 깊은 영적 화면을 창조한 것입니다.

'사무엘'이라는 이름에는 '하나님께 구했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사무엘이 어머니 한나의 기도로 태어난 아이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무엘'이라는 이름은, 성경 사무엘상 3장 3~14절에서 하나님이 어린 소년에게 말씀을 내리시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 밤, 성전은 고요했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고, 어린 사무엘은 성소 곁에 누워 있었습니다. 말씀도 이상도 희귀하던 시대, 하나님은 그 적막한 어둠 속에서 한 아이를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그 밤의 장면은 우리 모두의 심령에 남겨져야 할 상징적 그림입니다. 이는 단지 어린아이의 첫 종교적 체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거룩한 소통이 회복되는 순간이었고, 침묵 속에 갇혀 있던 하나님의 말씀이 한 아이의 귀와 마음을 통해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한 새 시대의 서곡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늘 예상 밖에서 시작됩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듣고 즉시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인간의 음성으로 착각했지만, 그 순수한 반응 자체가 이미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의 기울임이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엘리 같은 노제사장을 제쳐두고, 아직 성경적 언어로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부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나이나 위치보다 ‘마음의 상태’를 보신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엘리의 지혜로운 안내를 통해 사무엘은 비로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배웁니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 짧은 기도는 어린아이의 입술에서 나왔지만, 그 안에는 참된 경청의 자세, 순종의 결심, 그리고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는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이 말씀 앞에 설 때마다 되뇌어야 할 고백이 아닐까요?

우리는 얼마나 자주 기도하면서도 말만 하고 돌아섭니까? 내 뜻을 관철시키고 싶어서 하나님께 나아간 적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진짜 기도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조용히 머물고, 그분의 음성이 내 존재 전체를 울리도록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참된 기도가 시작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이는 단순한 시간적 표기가 아닙니다. 영적 어둠이 가득한 시대였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 세상의 혼란을 보며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셨던 것처럼, 누군가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부르고 계십니다. 문제는, 누가 그 음성을 듣고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기도는 먼저
"내가 여기 있나이다"에서 시작됩니다. 사무엘은 처음 부름을 들었을 때, 엘리에게 달려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이처럼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말 잘하는 것, 성경 지식이 많은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여기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라고 정직하게 나아오는 태도입니다. 어린 사무엘처럼,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분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마음으로 계속 반응하고, 누군가의 신앙적 안내를 통해 말씀의 자리로 나아간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시면서,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무색무취의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 전체를 흔들고, 내 귀만이 아니라 심령 깊은 곳까지 울리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귀가 아니라, 모두의 귀가 울리기를 말입니다. 진리 앞에서 깨어나기를, 하나님께 다시 무릎 꿇기를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당신의 기도는 무엇입니까?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 기도는 단지 과거의 한 장면이 아닙니다. 이 기도는 지금, 오늘, 내 삶에서도 드려져야 할 가장 정직하고 순수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시고, 여전히 부르십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과 자기 생각의 목소리를 잠잠케 하고,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이름을 부르시며, 그분의 일에 귀 기울일 준비된 자를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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