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 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 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에스더 4:15~17, 5:1~3)
솔로몬왕이 물러난 이후 이스라엘은 두 나라로 쪼개어져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솔로몬왕의 아들 르호보암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강압정치를 펴자, 열지파가 반역하여 북쪽에 이스라엘왕국을 세웠습니다. 남쪽의 유다왕국에는 유다지파와 벤야민지파만 남게 됐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스라엘왕국은 강대국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무너지고, 유다왕국도 바빌론제국에게 멸망당하고 맙니다. 바빌론제국은 유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가 노예로 삼았습니다.
몰락하고 멸망당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등 힘겨운 시기를 보냈던 이스라엘에 선지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절망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애썼고,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메시아를 예언한 이사야, 그리고 유대민족을 말살의 위기에서 구한 에스더가 이 때의 선지자들입니다.
어느 날, 바빌론제국의 아하수에로왕이 잔치를 베풀었는데 왕비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아하수에로왕은 이 거만한 왕비를 폐위하고(에스더 1장) 바빌론제국에 포로로 잡혀와 있던 유대 여인 에스더를 왕비로 맞았습니다(2:1~18), 한편, 바빌론제국의 총리대신 하만은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가 유대인임을 알고 그 민족 전체를 말살할 음모를 꾸며 왕의 조서를 받는데 성공했습니다(3장). 에스더는 유대인들 모두가 말살될 위기에 처하자 목숨을 걸고 왕을 찾아갔습니다. 그 당시 바빌론제국에서는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을 찾아가는 행위는 사형에 처해질 만큼 불경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왕은 자신을 먼저 찾아온 에스더를 보고 기뻐하며 금홀까지 하사했습니다.
아하수에로왕이 에스더를 어여삐 여겨 소원이 있으면 나라의 반이라도 줄 테니 말하라고 하자, 에스더는 하만의 음모를 알렸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오래 전에 모르드개가 자신의 목숨을 구한 일을 떠올렸습니다. 생명의 은인 모르드개가 하만의 음모로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안 아하수에로왕은 진상을 파악한 뒤 죄가 들통 난 하만을 처형했습니다. 이로써 유대인들은 화를 면함은 물론, 모르드개가 총리에 임명되는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하만은 유대인을 말살시키고자 했던 날을 제비(부르)를 뽑아 정했는데, 유대인들은 하만의 음모에서 벗어난 날을 부림절로 지정해 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이 선택하신 자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헌신 하기를 주저한다면 하나님은 다른 통로를 통해서라도 뜻을 이루시고 우리는 은총을 놓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했을 때 진정한 삶을 얻게 됩니다.
역사는 언제나 용기를 낸 한 사람을 통해 바뀌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용기는 대개 생명을 건 결단 속에서 피어납니다. 에스더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왕후라는 지위에 있었지만, 유대 민족의 위기를 모른 체하고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의 말처럼 “이 때를 위하여 네가 왕후의 자리에 이른 것이 아니냐”는 부르심 앞에서, 에스더는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머뭇거림을 금식과 기도로 이겨내며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고백과 함께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신앙의 길에서도 우리는 종종 결단의 문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두려움과 손해 계산이 발목을 잡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순간이 참된 생명을 얻는 때입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을 때, 하나님은 그 헌신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에스더가 그랬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내가 물러서더라도 뜻을 이루실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우, 나는 그 은총의 통로가 되는 기쁨을 잃게 됩니다. 반대로, 내가 두려움을 넘어 주님께 순종하면, 그분의 구원 역사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담대한 믿음입니다. 생명을 건 순종의 자리에서, 우리는 오히려 가장 안전한 하나님의 품을 경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