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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다윗 언약의 진정한 복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27.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32:1)

어린 시절,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물맷돌 하나로 거인을 쓰러뜨린 소년, 목동에서 왕이 된 사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윗의 복'을 이야기할 때 이것을 떠올립니다. 보잘것없는 자리에서 시작하여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끝까지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것이 다윗 이야기의 핵심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사무엘하 1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봄이었습니다. 전쟁의 계절이었습니다. 요압 장군은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암몬 자손과 싸우러 나갔고, 언약궤도 그 전쟁터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왕궁에 남았습니다.

저녁 무렵, 낮잠에서 깬 다윗이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아라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헷 사람, 즉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
'우리아'는 히브리어로 '여호와는 나의 빛'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이스라엘의 군인으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전쟁에 나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 이름
'밧세바''맹세의 딸'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평범하지만 신실한 가정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여인이 누군지를 알고도 사람을 보내어 데려왔습니다. 왕권을 이용한 범죄였습니다.

임신 소식을 들은 다윗은 황급히 우리아를 전선에서 불러들였습니다. 계획은 단순했습니다. 우리아가 집에 돌아가 아내와 함께 자면, 태어날 아이가 자연스럽게 우리아의 자식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왕궁의 경비실에서 군사들과 함께 잠을 잤습니다. 다윗이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다윗은 그 다음 날 우리아에게 술을 잔뜩 먹였습니다. 취하면 마음이 풀려 집에 들어가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아는 술에 취해서도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에 대한 그의 사명감은 술기운보다 강했습니다.

결국 다윗은 편지를 썼습니다. 요압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선에 세워두고 후퇴하여 그가 죽게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우리아 자신의 손에 들려 보냈습니다. 우리아는 자신의 사형선고문을 직접 배달한 셈이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왕에게 충성했고, 끝까지 전장을 지켰고, 그리고 죽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밧세바는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세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조용히 돌아갔습니다. 그때 나단 선지자가 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직접 고발하는 대신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부유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양 떼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웃에는 가난한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새끼 양 한 마리만 있었습니다. 그 양은 가족과 함께 자라며, 아이들과 함께 먹고, 품 안에서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유한 사람에게 손님이 왔을 때, 그는 자기 양 떼에서 잡지 않고, 가난한 사람의 그 양 한 마리를 빼앗아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다윗은 분노했습니다.
"그런 자는 마땅히 죽어야 하고, 네 배를 갚아야 합니다!" 그는 율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죄에는 날카로웠습니다. 바로 그때 나단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다윗이 쓴 시편 51편은 그 순간의 무너짐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그는 왕이었고, 영웅이었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자리 위에서도 그는 간음하고 살인한 죄인이었습니다. 아니, 그뿐 아니라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 태어났으며 모태에서부터 죄인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다윗의 복을 이야기하면서 놀라운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그는 다윗이 왕이 된 것을 복이라 하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아브라함이 약속한 땅을 정복한 것도 복의 핵심이 아닙니다. 바울이 인용하는 것은 시편 32편입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다윗이 받은 복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모든 죄, 밧세바와의 간음,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몬 살인, 그 모든 불법이 용서받는 것이 복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깊은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게 했듯이,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아는 자기를 사형시키는 편지를 직접 들고 요압에게 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죄 없는 자가 죄 있는 자를 위해 죽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 속에 이미 십자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그리스도가 받으실 고난과 영광을 미리 증언했다고 말입니다. 다윗은 단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난받는 메시아를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시편으로 증언한 선지자였습니다.

시편 22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씁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훗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말씀을 그대로 외치셨습니다. 다윗은 천 년 전에 이미 그 장면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이 그를 주라 불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것은 단순한 논리 퀴즈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보다 앞서 계셨고, 아브라함보다 앞서 계셨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시간 안에 갇혀 있던 유대인들은 그 말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복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건강, 재산, 성공, 사회적 지위. 다윗의 이야기로 말하자면, 목동이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복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간음과 살인에도 불구하고, 그 죄가 용서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둘 다 자신의 행위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듯이, 다윗도 자신의 죄가 사해지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복의 본질입니다. 일한 것 없이, 자격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윗 언약이 영원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언약은 다윗의 능력이나 자격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간음하고 살인하는 죄인인 다윗 위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세우신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지만, 다윗보다 먼저 계셨던 분, 우리의 죄를 위해 우리아처럼 죽임을 당하신 분, 예수님입니다.

다윗의 진짜 복은 왕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편 32편의 첫 줄에 있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당신과 나도 그 복 안에 있습니까? 그것이 오늘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묻는 질문인 것입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로마서 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