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 3:16)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으로 생각합니다. 광대한 우주 너머, 높고 거룩한 보좌 위에 앉아 계신 분.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만 잠시 귀를 기울이시는 분.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계시하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신 하나님,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에 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우리는 흔히 몇 개의 사건으로 나누어 이해합니다. 탄생, 사역, 십자가, 부활, 승천. 그리고 그 다음으로 성령 강림.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못 박히신 그리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 승천하신 그리스도, 이 모든 그리스도의 행보는 결국 한 가지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안에 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다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분은 여전히 갈릴리의 한 육체 속에 갇혀 계셨을 것입니다. 한 번에 한 사람 곁에만 있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심으로써 그 모든 제약을 넘어서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의 밀알의 비유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으로써 오히려 모든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실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하나의 '능력' 혹은 '은혜로운 영향력' 정도로 이해합니다. 방언을 하게 하거나, 기적을 일으키거나, 예언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신비로운 힘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깊고 본질적인 차원에서 성령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령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마지막 아담,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부활 이후의 그리스도는 이제 영의 형태로 존재하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동시에 생명의 영이십니다.
그렇기에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직후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령이 오시는 것이 곧 예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둘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신앙은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우리는 단지 역사 속의 예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서 우리 안에 실제로 거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성한 생명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지 어떤 교리를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 자체가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사건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받은 것이며, 그 생명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분"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대담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써 그분의 성분, 즉 그분의 본질적 속성인 거룩함, 사랑, 생명, 빛이 우리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한 방울의 잉크가 맑은 물 속에 퍼져나가듯이, 하나님의 성분이 우리의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우리를 물들여 갑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함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외부적인 규칙을 지킴으로써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거룩하신 분이 거하시기에, 그분의 거룩함이 우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네 가지 방면으로 나타납니다. 이 네 가지는 각각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이 자라나는 과정의 각기 다른 국면들입니다.
첫째는 거듭남입니다. 이것은 시작입니다. 죽어 있던 우리의 영이 살아나는 순간, 하나님의 생명이 처음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존재가 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요한복음 3장의 말씀처럼, 우리는 이제 영적인 차원에서 태어난 존재입니다.
둘째는 기름 부으심입니다. 구약에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기름이 부어졌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되었음을 의미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구별된 존재임을 내면 깊이 확증해 주는 역사입니다. 요한일서 2장 27절은 우리 안에 있는 이 기름 부으심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준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지 외부적인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직접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셋째는 거룩케 하심입니다. 이것은 단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과정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끊임없이 우리의 오래된 성품과 씨름하시고,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분노, 교만, 욕심이 조금씩 다루어지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노력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능력 있게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넷째는 변화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은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고 말씀합니다. 이 변화는 단지 도덕적 향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의 변화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가십니다. 마치 금이 풀무불에 단련될수록 더욱 순수해지듯이,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을 닮아가는 존재로 변화되어 갑니다.
이 모든 가르침이 아름답고 깊다 할지라도, 그것이 단지 신학적 개념으로만 머문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이것이 실제적인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그것은 우리가 매 순간 우리 안에 계신 분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먼 곳에 계신 분께 소리쳐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계신 분께로 우리의 주의를 돌리는 행위가 됩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 말씀을 살아있는 양식으로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도록 자신을 여는 행위가 됩니다.
어려운 상황, 유혹의 순간, 두려움이 몰려올 때,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분을 기억합니다. "내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다"는 요한일서 4장의 말씀은 추상적인 위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실재에 근거한 구체적인 진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멀리 계시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에덴의 동산에서 아담과 함께 거니셨던 그 하나님은, 결국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까지 모든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죄의 장벽, 죽음의 장벽, 육체의 장벽까지도 허무셨습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은 하나님의 사랑이 도달한 가장 극단적인 지점입니다. 그분은 우리 곁에 계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되시기를, 우리의 호흡이 되시기를, 우리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와 하나가 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가장 깊은 신비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실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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