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는 종종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가장 공손하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가장 쉽게 무례해집니다. 처음 만난 거래처 사람에게는 말 한마디를 고르고, 카페 직원에게는 웃으며 “감사합니다”를 말하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부모님의 질문에 단답으로 대답하고, 연인의 작은 부탁에는 짜증부터 앞세웁니다. 오래 함께했기 때문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관계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 믿어버립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어머니는 묻습니다. “오늘은 어땠어?” 그 질문엔 늘 걱정과 관심이 섞여 있습니다. 하지만 피곤한 날의 우리는 “그냥 그래”라며 대충 넘기거나, 핸드폰을 보며 건성으로 대답합니다. 밖에서는 하루 종일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친절하게 행동하다가도,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집에서는 그 피로를 고스란히 쏟아냅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무심한 말 한마디가, 하루 종일 우리를 기다린 사람의 마음에는 작은 상처로 남는다는 걸 말입니다. 연인 사이도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메시지 하나에도 조심스럽고, 말투 하나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 정도는 이해해 주겠지”라는 생각이 스며듭니다.
기분이 나쁘면 이유 설명 없이 퉁명스럽게 굴고, 바쁘다는 이유로 대답을 미루며, 서운함을 표현하기보다는 침묵으로 대신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귀는 사이인데, 이 정도는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사람 사이의 가장 큰 오해는 늘 여기서 시작됩니다. “말 안 해도 알겠지.”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된 친구일수록 연락이 뜸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약속을 미루면서도 “우리는 그런 거로 서운해할 사이 아니잖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관계는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태도로 유지됩니다. 아무 말 없이 지나간 시간은 오해를 키우고, 쌓인 서운함은 결국 거리로 바뀝니다. 친하다는 이유로 생략해 버린 배려들이, 어느 날 갑자기 ‘왜 이렇게 멀어졌지?’라는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심리학자 루이스 헤이는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때, 더 행복하고 긍정적으로 변한다.” 존중받고 있다는 감정은 거창한 이벤트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낯선 사람의 일회성 친절보다,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사람의 말투와 태도에서 더 깊이 자리 잡게 됩니다. “고생했어”라는 짧은 말, “네 입장은 이해해”라는 한 문장, 눈을 보며 듣는 몇 분의 집중. 이런 사소한 다정함이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우리 역시 한때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일을 하면서는 신중했고, 사회에서는 예의를 잃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는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솔직함이 아니라, 익숙함에 기대어 만든 무례였다는 걸 말입니다.
다정함은 친밀함의 결과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정함이 친밀함을 만들어갑니다. 가까운 사이라서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더 신중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다고 해서, 내일도 그대로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관계는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으로 쌓아 올리는 감정의 집과 같은 것입니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오랜 시간을 무너뜨릴 수 있고, 조금 더 부드러운 말투 하나는 삐걱대던 사이를 다시 이어줍니다. 당연한 관계란 없습니다. 부모도, 연인도, 친구도 돌보지 않으면 멀어집니다. 하지만 매일의 다정함이 쌓이면, 그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 버텨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다정하자. 익숙한 관계일수록 더 섬세하게 말하자.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는 기대 대신, 말로 아껴주는 사람이 되자." 다정함은 시간이 만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그건 매일의 태도가 빚어내는, 관계의 거리감을 조율하는 가장 아름다운 기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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