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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부끄러움에서 영광으로 - 아빠의 손수레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9.

어떤 사람이 오랜만에 버스를 탔습니다. 빈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하루가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 하나가 버스에 올랐습니다. 단정한 옷차림, 뽀얀 피부, 말투와 표정에서 고운 집안에서 사랑받고 자란 사람 특유의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그 학생은 내 자리 옆 손잡이를 잡고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그때 버스가 횡단보도 신호에 걸려 멈췄습니다. 창밖으로 시선이 옮겨졌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의 한 아저씨가 손수레를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수레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 실려 있었고, 다리 한쪽은 불편해 보였습니다. 절룩거리며 한 발 한 발 옮기는 모습이 애써 힘을 아끼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 장면을 본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뒤쪽에서 작은 탄식들이 들려왔습니다.
“참 안 됐다…” “이 추운 날에 저렇게 고생하시네…" 그때였습니다. 옆에 서 있던 그 여학생이 갑자기 창문을 열더니 망설임 없이 크게 외쳤습니다. “아빠~~~~!” 순간 버스 안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창밖으로 쏠렸습니다.

설마 하는 눈빛들이 오갔습니다. 손수레를 끌던 아저씨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학생을 발견하자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습니다.
“이제 집에 가니?” “네, 아빠!” “근데 옷은 왜 그렇게 얇게 입고 나왔어. 감기 들면 어쩌려고.” 딸을 걱정하는 아빠의 말투에는 꾸밈이 없었습니다. 딸도 그런 아빠를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그 웃음에는 이상하리만치 빛이 났습니다.

그는 그 순간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여겼던 그 모습은, 이 딸에게는 결코 숨기고 싶은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아빠’ 그 자체였다는 것입니다. 버스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아마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 아이는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마음이 참 곱구나.’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오래된 기억 하나를 불러왔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길을 걷다가 멀리서 아버지를 발견하고 괜히 골목으로 피해 돌아갔던 기억입니다. 친구 아버지는 말끔한 양복 차림에 번듯한 승용차를 몰고 오시는데, 우리 아버지는 흙 묻은 작업복에 낡은 트럭을 타고 계셔서 괜히 친구들 앞에 서기 부끄러웠던 순간입니다.
“아빠!” 하고 부르기는커녕, 눈을 피하고, 모른 척하고, 빨리 지나가 버렸던 기억입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흙 묻은 옷이 누구를 위해 묻은 것인지, 그 낡은 트럭이 누구의 학비와 밥값을 실어 나른 것인지, 그리고 10년쯤이 지나서야 아버지라는 이름이 가슴을 저미는 단어가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제는 다시 부르고 싶어도, 손을 잡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되었을 때 말입니다.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그때 피하지 말걸, 부끄러워하지 말걸, 달려가서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 드릴걸, 그 버스 안에서 만난 딸의 모습은 단순히 효심 깊은 한 장면이 아니라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은 계시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랑은 상대의 조건이 아니라, 존재를 껴안는 것입니다. 사랑은 남들 앞에서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랑은 체면보다 관계를 먼저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했던 많은 것들은 사실 누군가의 희생이었고, 누군가의 사랑이었고, 누군가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혹시 여전히 마음 한편에 피해 돌아가고 싶은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묵묵히 손수레를 끌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딸의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아빠~~~~”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그 한마디가 한 사람의 삶을 존귀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불러야 할 이름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더 늦기 전에, 그 이름을 부를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기를 조용히 묵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