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한 어리숙한 사람이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한 단 지고 내려왔습니다. 그는 당나귀에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당나귀 위에 앉아 있으면서도, 나무 짐은 여전히 자기 어깨에 멘 채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습니다. “아니, 나무를 당나귀에 싣고 가면 편할 텐데 왜 자네가 직접 지고 가는가?”
그러자 그는 제법 의기양양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당신들은 너무 잔인합니다. 당나귀가 나를 태우고 가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나무까지 지게 하겠습니까? 차라리 제가 짐을 지는 편이 낫지요.”
그는 나름대로 당나귀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었지만,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고 우스운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비는 있었으나 지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비 없는 지혜는 차갑고 건조합니다. 머리로만 계산하고 따지기 때문에 인간적인 온기가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혜 없는 자비는 맹목적이어서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선한 뜻을 품었으나, 방법이 잘못되면 그 결과는 허망할 뿐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돕고자 할 때, 진정 필요한 것은 단순한 ‘착한 마음’이 아닙니다. 그 마음을 실현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어려움 속에 쓰러져 있을 때, 무조건 끌어일으키려 하기보다 그 사람이 스스로 일어날 힘을 찾을 수 있도록 옆에서 기다려주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도움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손을 잡아주는 대신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어리숙한 사람의 이야기는 또 다른 교훈을 줍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에게도 가끔 ‘당나귀’가 주어집니다. 당나귀는 짐을 함께 나눠지는 도구이고, 은혜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굳이 모든 짐을 혼자 지고 가려 하지 말고, 내려놓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려는 강박 속에 살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나누는 것이 마치 약함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당나귀 즉, 함께 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제도, 기회, 은혜는 결코 무시하거나 외면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얻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성찰할 수 있는 쉼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자비와 지혜의 균형을 배우며 살아야 합니다. 선한 마음이 지혜와 만나야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또, 내 삶에 주어진 당나귀를 발견하면 기꺼이 짐을 내려놓고, 성찰과 여유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나귀에 앉아 있으면서도 굳이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매일같이 반복되는 자기 고집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와 쉼은 ‘내려놓음’ 속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진 은혜의 당나귀가 있습니다.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으며, 믿음의 공동체나 하나님의 은혜 그 자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 당나귀 앞에서 짐을 내려놓고, 자비와 지혜가 어우러진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비는 지혜와 함께할 때에만 참된 도움이 된다. 내려놓음의 지혜가 우리를 성찰과 여유로 이끈다. 은혜의 당나귀가 주어질 때는 기꺼이 짐을 나누고 내려놓으라."
“내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편 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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