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은 누군가의 마음을 가장 아름답게 흔드는 계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빨갛게 물든 단풍은 하나의 절경이고,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길은 마치 누군가 정성껏 수놓아 놓은 비단길처럼 아름답습니다. 오래전, 이런 가을의 풍경 속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경험했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였습니다. 아직 KTX가 없던 시절이라, 새마을호를 타고 긴 시간을 달려야 했습니다. 차창 밖 풍경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저는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뒷자리에 앉은 중년 부부의 대화가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와! 벌써 겨울이 다가왔나 봐. 나뭇잎이 다 떨어졌네. 그런데 낙엽 덮인 길이 참 예쁘다. 알록달록 비단을 깔아놓은 것 같아. 직접 밟아 보면 얼마나 푹신할까?”
남자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저 산에는 아직 단풍이 잔뜩 남아 있네. 온통 빨갛게 물든 게 아주 멋지군.”
그 순간 궁금증이 생겨 뒤를 돌아보았을 때, 제 눈앞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아주머니와, 그 곁에서 끊임없이 풍경을 설명해주는 남편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남편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고, 두 사람의 손은 꼭 맞잡혀 있었습니다. 마치 실제로 모든 풍경을 보고 있는 듯한, 그 미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깊은 행복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제 마음을 오래도록 울렸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느끼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불행은 언제나 ‘결핍’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는 건강을 잃어 불행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재물을 가지지 못해 좌절합니다. 또 어떤 이는 능력이 부족하다며 스스로를 탓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우리의 결핍은 절대 완전한 절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결핍은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 얼마든지 채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내의 결핍은, 남편의 세심한 눈이 되어주는 사랑으로 채워졌습니다. 혼자였다면 공허했을 풍경이,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서 오히려 더 아름답게 다가온 것입니다.
행복은 ‘갖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또 내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움 받을 때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충만함을 누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가는 곳마다 행복을 만들어내고, 어떤 이들은 그들이 떠날 때에야 행복을 만들어낸다.”
내가 다른 사람의 결핍을 채우며 살아갈 때, 나는 그 사람에게 ‘가는 곳마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내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외면할 때, 나는 떠난 뒤에야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았던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고 있을까요? 그들의 부족을 외면한 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내가 당신의 눈이 되어줄게요’라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일까요?
가을의 단풍은 언젠가 다 떨어지고, 낙엽길도 곧 사라집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채워주고, 함께 울고 웃었던 순간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사랑의 비밀입니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당신이 눈이 되어 주십시오. 당신의 말 한마디, 작은 친절, 따뜻한 배려가 누군가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사람만이 아니라 당신 자신도 더 깊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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