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부서진 존재가 아니라, 회복 중인 존재다.” - 빅토르 프랭클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완벽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왜 그때 그렇게 했을까.” “내가 다 망쳐버린 거야.” 하지만 사람으로 산다는 건 원래 삐걱거리는 일입니다. 걸어가다 넘어지고, 방향을 잘못 잡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겨우 균형을 맞춰 가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한 직장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로 인해 팀 전체가 야근을 해야 했고, 상사의 질책이 이어졌습니다. 그는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자신을 책망했습니다. “내가 무능해서 그래.” “나는 늘 이런 사람이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는 여전히 그 순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미 상황은 정리되었고, 동료들조차 잊어버린 일인데, 오직 그 자신만이 스스로를 벌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관계에서 큰 상처를 남겼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말 한마디, 선택 하나가 상대의 마음에 깊은 흉터를 남겼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는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때의 그는 미성숙했고 두려웠으며, 최선을 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악의를 품은 괴물이 아니라, 서툰 인간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실수한 ‘행동’이 아니라, 실수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내가 잘못했다”에서 멈추지 못하고 “나는 잘못된 사람이다”로 넘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다른 사람에게 어떤 비난의 말을 들었든, 그 이유만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사랑을 주고받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자격을 박탈당할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법정이 아니라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삶에는 판결문보다 회복이 필요합니다. 어릴 적 넘어져 무릎이 깨졌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아무도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왜 넘어졌어? 넌 걷지 말아야겠구나.”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아프겠다. 일단 앉아. 약 바르자.”
상처받은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난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합니다. 정죄가 아니라 이해가 필요합니다. “당신 탓이 아닙니다.” 이 말은 책임을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당신의 존재 전체를 유죄로 만들지 말자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아주 작은 변화가 시작됩니다. 자기혐오가 멈추고, 자기 연민이 생기고, 비로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대단한 확신을 갖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나는 살아도 된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에게 최소한의 허락을 주는 일입니다. 상처는 부정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정받을 때 비로소 치유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과거의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 주면 어떨까요. “그때의 너는 최선을 몰랐을 뿐이야.” “너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인간이었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도 회복 중인 사람일 뿐입니다.
“당신은 지금의 모습 그대로도 충분하다. - ”칼 로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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