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의 도로는 정직했습니다. 굽이치지 않았고, 핑계를 대지 않았습니다. 에그나티아 대로는 기원전 146년에 건설된 이래 수백 년 동안 제국의 군단과 상인과 나그네를 실어 날랐습니다.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까지, 그 길은 약 150킬로미터, 튼튼한 다리와 넉넉한 전대가 있다면 열흘이면 충분한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일행에게 그날의 에그나티아 대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걷는 마가의 눈은 쉬지 않고 길 양쪽을 훑었습니다. 로마 군인의 투구라도 보일라치면 얼른 신호를 보내야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방금 전 빌립보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풀려난 몸이었습니다. 매질의 흔적이 채 아물지도 않은 채, 두 사람은 새벽 어스름 속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당장 눈앞의 위험도 위험이었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여비가 다 떨어졌네." 바울의 말에 실라가 전대를 뒤졌습니다. 12데나리온,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 열두 닢, 보통 사람의 열이틀치 품삯에 해당하는 돈이었지만, 세 사람이 데살로니가까지 여관과 끼니를 감당하기엔 엿새분도 채 안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거기서 천막 짜는 일로 생계를 꾸려 안정궤도에 오르자면 최소 한 달, 그 사이의 공백은 아무것도 채워 주지 않았습니다.
마가가 조용히 자신의 전대에서 5데나리온을 꺼냈습니다. 빌립보로 돌아가는 길에 쓸 돈이었습니다. "선생님, 받으세요. 저는 건강하고, 많이 먹지도 않아요. 빨리 걸으면 금세 집에 갈 수 있어요." 바울은 말리려 했지만, 마가의 손은 이미 그 닷 냥을 바울의 손바닥에 얹고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훗날 바울이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빌 4:1)이라 불렀을 만큼 각별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그 각별한 공동체조차 그날 아침, 바울의 빈 전대를 채워 주지 못했습니다. 상황이 워낙 급박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누구도 일부러 외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진실하더라도, 때로는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형태로 나타나지 못합니다. 빌립보 형제들의 사랑은 진짜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그날 아침 에그나티아 대로 위의 바울에게는 닿지 않았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이런 장면은 반복됩니다.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는 말년에 파산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를 아끼던 후원자들도, 그림을 사갔던 귀족들도, 정작 그가 암스테르담 뒷골목 셋방에서 쓸쓸히 죽어갈 때는 곁에 없었습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크림 전쟁에서 돌아온 뒤 수십 년을 병상에 누워 지냈습니다. 그녀가 전장에서 돌보았던 수천 명의 병사들 가운데 침상 옆에 앉아 손을 잡아 준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사람의 지지란 대개 그 사람이 빛날 때 몰려들고, 그 사람이 지쳐 쓰러질 때 흩어지는 법입니다.
그러나 바울 일행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실라는 현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낭만적인 위로를 늘어놓는 대신 조용히 셈을 시작했습니다. 길가에 자라는 산딸기를 눈여겨보세요. 날씨가 맑은 날엔 한뎃잠을 잡시다. 실라의 어머니가 기근이 들 때마다 했다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침밥을 기대하며 일어나고, 점심밥을 찾아 돌아다니며, 저녁밥을 기다리다 잠들자." 살아남는 사람의 지혜란 거창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를 견디는 작은 방법들을 하나씩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기대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겠어." 이 말을 단순한 경건한 체념으로 듣는다면 그 무게를 반쯤 놓치는 것입니다. 바울은 추상적인 신앙고백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구체적인 궁핍 앞에서, 몇 날을 버틸 돈도 없고, 로마 군인의 눈을 피해 걸어야 하고, 몸엔 매질의 상처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자비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딱 맞춰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면서도, 그 자비에 기댄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실제 모습입니다. 보장이 있어서 기대는 것이 아니라, 보장이 없어서 더 깊이 기대는 것입니다. 에그나티아 대로에서 시작된 그 암흑기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나중에 밝혀집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도착했고, 천막을 짰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나중에 고린도후서에서 담담하게 회고한 대로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으니"(고후 11:27) 이것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에그나티아 대로의 그 아침, 주머니에 열일곱 닢을 쥐고 걷던 세 사람의 이야기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결핍의 목록 다음에 바울이 쓴 것은 불평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자랑이라고 불렀습니다. 인간의 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리가 곧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드러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고후 12:9). 빈손으로 걷는 길은 부끄러운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손을 내밀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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