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울이 이르되 우리가 로마 시민인데도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개적으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사도행전 16:37)
“그들이 와서 직접 사과하게 하시오.” 밤사이 빌립보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광장에서 조롱과 폭력을 당하던 두 남자는, 하룻밤 사이 도시 전체를 떨게 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감옥은 무너졌고, 죄수는 하나도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더 치명적인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로마 시민이었다는 것입니다.
도시는 소문으로 끓어올랐습니다. “지진은 우연이 아니야.” “신들의 노여움이야.” “어제 그 귀신 들린 여종을 고친 그 사람들이잖아.”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사실이 분명해질수록, 책임을 피할 말부터 찾습니다. “나는 몰랐다”,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채찍질당한 이들이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신 앞에서도 죄 없는 자였다는 사실이 모든 입을 막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행정관들은 몰래 사람을 보냈습니다. “조용히 풀어 주고, 조용히 떠나게 하라.” 그때 바울이 입을 엽니다. “조용히? 아니오. 그들이 와서 직접 사과하게 하시오.” 이 말은 고집이 아니었습니다. 복수도 아니었습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한 단호함이었습니다. 바울이 그 자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빌립보에 남은 성도들은 여전히 ‘문제 일으키는 집단’, ‘언제든 폭력으로 다뤄도 되는 사람들’로 낙인찍혔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복음 공동체의 안전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 장면은 오늘 우리의 신앙과도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참는 것”이 아니라 “서야 할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을 이렇게 오해합니다. “억울해도 참는 것”, “불의해도 침묵하는 것”, “상처받아도 웃어 넘기는 것”. 하지만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매를 맞고도, 감옥에 갇히고도, 당당히 요구했습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나가라 말할 권리가 없다.” 이건 세상 권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복음은 불법적인 권력 아래 조용히 숨지 않는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비슷한 순간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 안에서조차 부당한 일 앞에 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괜히 문제 만들지 말자.” “신앙인은 참고 넘어가야지.” “내가 좀 손해 보면 되지.”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어떤 침묵은 미덕이지만, 어떤 침묵은 불의를 연장하는 공범이 됩니다.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물러서면, 뒤에 남은 사람들이 다시 매를 맞을 거라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상처투성이의 등을 가진 채로 말입니다.
마침내 모든 것이 정리되고, 바울과 실라는 형제자매들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따뜻한 물이 준비되고, 소금이 놓입니다. 누가는 의사답게 등을 살핍니다. 그리고 탄식합니다. “만신창이군요.” 이때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었네.” “다시는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네.”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셨을까.” 그런데 바울은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누가 선생,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네.” 바울은 상처를 붙잡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함을 늘어놓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바울에게 이 상처는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복음이 실제로 땅을 밟고 지나갔다는 증거였습니다. 마치 이런 말처럼 들립니다. “자, 이제 이 도시에는 교회가 남았네. 우리가 떠난 뒤에도 이 상처가 그들을 지켜 줄 걸세.” 이 이야기는 영웅담이 아닙니다. 기적의 스토리도 아닙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나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물러서고 있지는 않은가? 지켜야 할 사람들보다 내 평안을 더 우선하고 있지는 않은가? 상처를 피하려다, 복음의 자리를 비워 두고 있지는 않은가?
바울은 매를 맞았지만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풀려날 수 있었지만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를 얻었지만 책임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교회가 태어났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이렇게 전해집니다.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입니다. 상처를 안고, 그러나 물러서지 않으며, 오늘 우리의 신앙도 그 자리에 서 있기를, 빌립보의 밤처럼,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기를 조용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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