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제사장은 찧은 곡식과 기름을 모든 유향과 함께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레위기 2:14~16)
봄비가 지나간 뒤의 들판은 유난히 향기롭습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은 어느새 부드러워졌고, 농부의 손끝을 따라 연둣빛 싹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사람들은 그 싹을 보며 말합니다.
“올해도 잘되겠구나.” 그러나 사실 농부는 자신이 씨를 뿌렸다고 해서 곡식이 자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햇빛 하나도 자기 힘으로 만들지 못하고, 비 한 줄기조차 자기 뜻대로 내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레위기 2장의 “첫 이삭의 소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의 수고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인간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자리에서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빈손으로 광야를 떠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농토도 없었고, 창고도 없었고, 미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땅을 주셨습니다. 집을 지어놓고 기다리신 것처럼, 포도원과 우물과 곡식이 있는 땅을 선물처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땅에서 처음 거둔 첫 이삭을 내게 가져오라.” 겉으로 보면 감사의 예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단순한 감사 행사가 아닙니다. “하나님, 이것은 제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 고백이었습니다. 첫 이삭은 “내가 잘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진 은혜”의 증거였습니다.
어느 시골 교회에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그는 가을 추수철만 되면 가장 좋은 배추와 쌀을 교회로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말했습니다. “참 믿음이 좋으신 분이네요.”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조용히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게 아니에요. 사실은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 먹여 살리셨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가져오는 거지요.”
그 말에는 오랜 세월이 담겨 있었습니다. 태풍이 와서 밭이 무너진 날도 있었고, 병충해로 한 해 농사를 망친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사는 인생이 얼마나 허망한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열매를 볼 때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것도 은혜구나.”
성경은 인간을 “죽을 존재”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죄 아래 놓인 존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미래의 사건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이 이미 죽음의 권세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축복은 좋아합니다. 건강, 형통, 성공, 안정, 부유함 같은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정작 “나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은 싫어합니다. 마치 깊은 병에 걸린 환자가 병은 외면한 채 영양제만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병을 인정하지 않으면 진짜 치료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축복은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라는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첫 이삭의 제사는 인간의 자랑을 무너뜨립니다. “이건 내 실력이 아니다.” “내 열심의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 고백이 첫 이삭 속에 담겨 있습니다.
레위기에는 이상한 율법 하나가 나옵니다. “새끼 염소를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 처음 읽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풍요를 기원하는 종교 의식 속에서 그런 행동을 했습니다. 생명을 주는 젖으로 새끼를 삶으며 풍요와 번영을 빌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종교적 행위였습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자기 욕망이 있었습니다. “신도 결국 내 복을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은 그 사고방식을 끊어내고 싶으셨습니다. 사실 인간은 하나님마저 자기 성공을 위한 도구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기도도, 헌신도, 예배도 때로는 하나님 사랑보다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첫 이삭의 제사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님, 나는 주인이 아닙니다.” 그 고백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제사에서 제물을 불태우는 주체가 제사장이라는 점입니다. 사람이 직접 하나님께 자기 정성을 전달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의 공로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꾸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이 정도 했으면 하나님도 인정해 주시겠지.” “나는 그래도 남들보다 낫지.” 하지만 제사는 인간의 자랑을 철저히 막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 사랑을 버릴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초월할 수도 없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자기 힘으로 물 밖에서 살 수 없는 것처럼, 죄인은 자기 힘으로 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첫 이삭은 단순히 곡식의 첫 열매가 아닙니다. 장차 하나님께 드려질 참된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하나님 앞에 드려진 첫 이삭이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와 죽음을 짊어지시고 스스로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신앙은 “내가 얼마나 말씀을 잘 지켰는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이미 다 이루셨다”는 사실 위에 서 있습니다.
어느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늘 신앙생활이 두려웠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도를 해도 부족했고, 말씀을 읽어도 변하지 않는 자신이 미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런 고백을 들었습니다. “신앙은 네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죄인에게 내려오신 은혜다.” 그 말에 그는 울었습니다. 처음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는 이유가 자신의 경건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날 이후 그는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꾸만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삶은 자기 이름을 높이는 과정이 아닙니다. 내 의로움을 쌓아가는 경쟁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 안에는 자랑할 것이 없음을 배우고, 그럼에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가는 여정입니다.
첫 이삭의 소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엇으로 살고 있느냐?” “네 힘을 자랑하느냐, 아니면 은혜를 자랑하느냐?” 그리고 십자가 앞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거기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제사는 대단한 업적이 아니라, “주님, 저는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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