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위기 7장 11~18절
11 여호와께 드릴 화목제물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12 만일 그것을 감사함으로 드리려면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제물과 함께 드리고
13 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제물과 함께 그 예물로 드리되
14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
15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16 그러나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이면 그 제물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17 그 제물의 고기가 셋째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18 만일 그 화목제물의 고기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죄를 짊어지리라
시골 마을에 큰 잔치가 열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누는 화목한 잔치입니다. 그런데 그 잔치를 여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면 어떨까요? 한 사람은 잔치 음식을 손수 준비하며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사흘 밤낮을 준비했습니다. 이 정성을 봐서라도 즐거워해 주십시오." 이 잔치의 중심은 결국 '나의 수고'입니다. 감사와 기쁨의 이유가 준비한 사람의 노력에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귀한 분이 값을 다 치르고 이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받아서 누리면 됩니다." 이 잔치의 중심은 '베푸신 분'입니다. 기쁨의 이유가 손님들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레위기 7장의 화목제물 규례는 바로 이 두 번째 잔치가 무엇인지를 아주 정교하게 가르쳐 주는 본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오래된 제사 규례 속으로 들어가, 그것이 결국 우리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인 "나는 무엇을 근거로 하나님 앞에 기뻐하는가"에 어떻게 답하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문장 속에는 위험한 함정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바로 '내가'라는 말에 자꾸만 무게가 실린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멋지게 고백합니다. 그런데 바로 몇 구절 뒤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합니다. "그럴 수 없나이다." 왜일까요? 베드로가 믿었던 메시아는 십자가에서 죽는 메시아가 아니라, 로마를 물리치고 자기 소원을 이루어 줄 메시아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믿음은 사실 예수님을 향한 것 같았지만, 실은 자기 자신의 기대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며 늘 마음 한편에 이런 계산을 합니다. '내가 이만큼 기도했으니, 내가 이만큼 헌신했으니,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여기실 것이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여전히 자기 공로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의 참뜻이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고난을 견디라는 뜻이 아니라, 내 안에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만한 의로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화목제물의 규례는 바로 이 진리를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레위기 7장 12절은 화목제물을 감사함으로 드릴 때 누룩 없는 무교병을 함께 드리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일관되게 부풀리는 것, 곧 인간의 행위와 공로, 자기 의를 상징합니다. 마치 밀가루 반죽에 누룩을 넣으면 부풀어 오르듯이, 인간의 마음도 자기 공로를 조금이라도 인정받으면 스스로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어떤 성도가 오랫동안 교회 봉사를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순수한 감사와 사랑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스며듭니다. '내가 이 정도는 했으니, 하나님도 나를 인정해 주시겠지.' 봉사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봉사에 슬며시 누룩이 들어간 것이 문제입니다. 화목제물에 누룩 없는 떡을 드리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화목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오직 제물의 피 때문입니다. 그 피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잔치상에는 사람의 자랑거리가 하나도 올라갈 수 없습니다. 무교병은 말합니다. "이 잔치의 이유는 당신이 아닙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3절과 14절에서는 누룩 넣은 유교병도 함께 등장합니다. 다만 이 유교병은 불살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거제로 흔들어 드린 후 다시 제사장에게 돌아와 먹게 됩니다. 이 장면은 마치 이런 그림과 같습니다. 한 아버지가 자녀에게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자녀는 그 선물을 받아 기뻐하며 다시 아버지 앞으로 가지고 나옵니다. "아버지, 제가 이렇게 좋은 것을 받았어요!" 하고 들어 보이는 것입니다. 선물의 출처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있지만, 그 기쁨을 누리는 것은 자녀의 몫입니다.
세상에서 얻는 기쁨인 사업의 성공, 건강, 좋은 소식들은 그 자체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에게는, 이제 그 모든 기쁨이 성전 안에서, 곧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 안에서 다시 누려질 수 있습니다. 유교병이 성전 밖에서 불타 없어지지 않고 제사장에게 돌아와 먹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자리로 옮겨져 참된 기쁨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배경에는 감옥에 갇힌 사도의 처지가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바울은 기뻐할 조건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잃은 양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이렇게 기뻐하리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사람의 열심이나 성취가 아니라, 죄인이 자기 죄를 깨닫고 오직 주의 피만을 의지하게 되는 그 순간입니다.
한 아이가 넘어져 무릎을 다쳤을 때, 부모가 기뻐하는 것은 아이가 얼마나 튼튼하게 자랐는지가 아니라, 아이가 울면서라도 자기 품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이유는 우리 자신의 대단함이 아니라, 우리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입니다.
레위기 7장 15절부터 18절까지는 매우 구체적인 시간 규정을 말합니다. 감사제물의 고기는 반드시 그날에 먹어야 하고, 서원제나 자원제물은 이튿날까지는 허용되지만, 셋째 날까지 남기면 그 고기는 가증한 것이 되어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하고 오히려 죄가 됩니다.
이 규정은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깊은 영적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은혜로 받은 것을 자기 것으로 붙들고 오래 쌓아두려는 태도, 곧 자기 열심과 공로를 끝까지 자랑하고 내세우려는 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큰 상을 받았다고 합시다. 상을 받은 그날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평생 그 상패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제가 이걸 받은 사람입니다" 하고 내세운다면, 처음의 아름다움은 어느새 우스꽝스러운 자랑이 되어버립니다.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그날그날 감사함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마치 자기 소유물처럼 붙들고 두고두고 자기 공로의 근거로 삼으려 할 때, 그 은혜는 부패하여 오히려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 되고 맙니다.
레위기 7장의 화목제물 규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공로는 철저히 배제되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만 화목이 완성된다." 우리는 여전히 무의식중에 첫 번째 잔치의 방식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내가 준비한 것, 내가 이룬 것을 근거로 하나님 앞에 서려 합니다. 그러나 화목제물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의 잔치상에서 누룩된 자랑을 모두 걷어내고, 오직 어린양의 피 흘리심만을 그 중심에 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두 번째 잔치의 손님이 됩니다. 준비한 분이 따로 계시고, 우리는 그저 그 앞에서 감사하며 기뻐하는 자리, 성전 안에서 참된 안식과 즐거움을 누리는 자리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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