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 말씀 묵상

마가복음 - 요한의 세례, 물에서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베푸시리라."(마가복음 1:6~8)

사람들은 흔히 복음을
“좋은 소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막연히 기분 좋은 이야기나 위로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복음은 한 인물,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입니다. 나사렛에서 자라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바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 자체가 복음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완성된 약속은 성령을 통해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실제가 됩니다. 그래서 복음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흔드는 현재형의 진리입니다. 이 복음의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외모를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낙타털 옷, 가죽 띠, 메뚜기와 석청, 이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세련됨과는 거리가 멉니다. 도시의 언어도 아니고, 종교 권력의 상징도 아닙니다. 광야 한복판, 바람과 먼지 속에 서 있는 한 사람이입니다.

이 모습은 우연이 아닙니다. 성경을 아는 유대인이라면 이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한 인물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바로 엘리야입니다. 열왕기하에 등장하는 엘리야 역시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띠고 등장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구약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겠다.”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동시에 엘리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온 세례 요한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기대에 맞는 방식으로 오시는 하나님만 알아봅니다.

세례 요한이 외친 메시지는 단순했습니다.
“회개하라.”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요단강으로 불러 물속에 잠기게 했습니다. 율법에는 부정을 씻는 규례는 있지만, 요한처럼 모든 사람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는 규정은 없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제도도, 전통도 아닙니다. 그것은 종말의 외침입니다. “지금의 상태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없다.” 사람이 물속에 완전히 들어갔다가 나온다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상징입니다. 죽음과 새로운 시작입니다. 숨이 막히는 물속은 끝을 의미하고, 물 위로 나오는 것은 새 삶을 의미합니다. 이 장면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패턴과 맞닿아 있습니다.

성경에서 물은 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물은 세상을 심판했지만, 동시에 방주 안에 있던 여덟 사람에게는 구원의 통로였습니다. 홍수는 끝이었지만,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모세 역시 물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의 이름 자체가
“물에서 건져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전체가 홍해를 건넜습니다. 바다는 애굽 군대에게는 무덤이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해방의 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모든 사건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 물은 지금 너희를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준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물 자체가 아닙니다. 물에서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푸나,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신다.” 요한의 세례는 완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고편입니다. 진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세례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사건입니다.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 고백은 감정이 아닙니다. 종교적 결단도 아닙니다. 이것은 존재의 이동인 것입니다. 이전의 내가 물속에 잠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내가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노아 시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심판은 없다고 말합니다. 주의 다시 오심은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처음과 같이 그냥 흘러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오래 참으십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요한의 외침은 과거의 음성이 아닙니다.

지금도 들립니다.
“너희 뒤에 오시는 분이 있다.” “나는 신발 끈도 풀 자격이 없다.” “그분을 맞을 준비를 하라.” 이 외침 앞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광야의 외침을 무시할 것인가, 아니면 물속으로 내려갈 것인가, 복음은 우리를 안전한 곳에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물속으로 데려간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다시 나오게 하신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이 가리킨 어린 양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