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마가복음 1:10~11)
어느 날 아침, 한 아이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하늘은 왜 저렇게 높아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높은 게 아니야. 닫혀 있는 거야."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하늘이 닫혀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오래 읽은 사람들은 압니다. 하늘은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이 닫힌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닫힌 하늘이 갈라지는 날이 왔습니다.
요단강 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 광야에서, 갈릴리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세례 요한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온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요단강에서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줄에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사람이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사렛은 보잘것없는 곳이었습니다. 그 변방 마을에서 온 이 사람이 죄인들의 줄에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예수였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이 죄인들의 줄에 서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한 점 죄도 없으신 분이, 회개하는 자들이 받는 물세례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당황했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요한이 "제가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 오십니까?"라고 만류했다고 기록합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어떤 잠수사가 바다 깊은 곳에서 조난당한 사람을 구하려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구조자는 물 밖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습니다.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 차갑고 어두운 물속으로, 조난자가 있는 그 자리로 내려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물속에 있었습니다. 죄와 사망이라는 물속에서, 죽어가면서도 죽은 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그 물속으로 들어오시지 않으면 우리를 건져내실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알지 못하시는 분이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이것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율법을 제정하신 분이 율법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왕이 직접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 죄수들과 같은 자리에 앉으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우리를 거기서 꺼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졌습니다. 이 장면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 이전에는 하늘이 어떠했습니까? 닫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 하늘이 열리고 닫히는 역사였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면 하늘이 닫혔습니다.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신명기는 경고했습니다. "너희가 범죄하면 하늘은 놋이 되고 땅은 쇠가 되리라."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 이후, 이스라엘에는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400년 동안, 선지자의 목소리가 사라졌습니다. 계시가 끊겼습니다. 하늘이 닫힌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 닫힌 하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사 64:1) 얼마나 간절했으면 하늘을 찢어달라고 했겠습니까? 가르고, 찢고, 내려오시기를 간청한 것입니다. 그것은 수백 년을 이어온 이스라엘의 통곡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지에서 하늘이 열리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나라가 완전히 망한 자리에서, 더 이상 소망이 없어 보이는 절망의 땅에서,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습니다. 완전히 망한 자리에서 새로운 약속이 시작된 것입니다. 요단강의 그 아침,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시는 순간, 마침내 그 하늘이 갈라졌습니다. 이사야의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수백 년의 침묵이 끝난 것입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셨습니다. 비둘기,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에서 두 장면이 겹쳐 보일 것입니다. 첫 번째는 창세기 1장입니다.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습니다. 그 운행하심으로부터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노아 홍수 이후입니다. 물이 잦아드는지 알기 위해 노아가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을 물고 돌아왔을 때, 심판의 물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음을 알았습니다.
두 장면 모두 새로운 시작을 가리킵니다. 최초의 창조, 그리고 홍수 이후의 새 세계,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신 것은 이제 또 하나의 새 창조가 시작됨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 음성은 이스라엘에게 낯설지 않은 말씀이었습니다. 이사야 42장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시편 2편에서는 하나님이 메시아에게 선언하셨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이 기다린 그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기뻐하시는 바로 그 아들입니다. 그가 지금 요단강에서 물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나사렛 출신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그 사람이, 바로 하늘이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느 가난한 집 아이가 있었습니다. 마을에서는 그 아이를 별로 대단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마을 한가운데 서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아이가 내 아들이다.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한다." 마을 사람들이 그제야 그 아이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음성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온 세상 앞에서 예수님을 당신의 아들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하늘이 "갈라졌다"는 표현입니다. 원어를 보면 이것은 단순히 열린 것이 아니라 찢어진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이 단어를 다시 한번 사용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입니다.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막 15:38) 세례 때 하늘이 찢어지고, 십자가에서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같은 단어입니다. 같은 사건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이것을 아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나라에서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청탁을 넣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세례는 단지 물에 잠기는 예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세례는 십자가였습니다. 죄인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함께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단강의 물세례는 골고다의 십자가를 가리키는 예고편이었습니다. 하늘이 찢어진 것은, 훗날 휘장이 찢어질 그날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 찢어짐으로 아무도 들어갈 수 없던 지성소의 문이, 즉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찢어진 하늘 아래에서 가장 먼저 고백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군인, 백부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바라보던 이방인이 외쳤습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종은 "이방에 정의를 베풀" 분이었습니다. 시편 2편의 메시아는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분이었습니다. 찢어진 하늘은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하늘이 열리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부정하다고 여기던 짐승들이 가득한 보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환상을 따라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이방인의 집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베드로는 담담하게 증언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믿음으로 마음을 깨끗이 하시고,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요단강에서 갈라진 하늘은, 결국 온 세상을 향해 열린 하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물세례를 받으신 것은, 우리의 죄 안으로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를 죄와 함께 묻어주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를 새 생명으로 일으키신 사건입니다. 성령을 부어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사건입니다.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단강의 그 아침, 갈라진 하늘로부터 시작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가 말입니다.
하늘이 닫힌 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해도 하늘이 막힌 것 같고, 말씀을 읽어도 메마른 것 같고,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은 그 자리, 그것은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 경험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닫힌 하늘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찢으셨습니다. 다시는 닫히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하늘이 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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