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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마음이라는 거울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21.

어느 늦가을 오후, 어떤 사람이 오래된 친구와 산사(山寺)를 찾았습니다. 친구는 몇 달째 직장 문제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승진에서 밀렸고, 팀 내 관계도 꼬여 있었으며, 매일 밤 이불 속에서 온갖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돌리다 새벽을 맞이한다고 했습니다. "답을 찾고 싶어서 책도 읽고, 유튜브 강의도 보고, 상담도 받아봤는데"라며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아."

절 마당에 들어서자 바람 한 점 없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물은 너무도 고요해서 맞은편 단풍나무가 수면에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두 개였습니다. 하나는 땅 위에, 하나는 물 안에 있었습니다. "저 연못에 돌을 던지면 어떻게 될까?" 그가 물었더니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나무가 사라지겠지. 물결에 흔들려서."

그렇습니다. 연못이 출렁이면 나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물이 잘못된 것도, 나무가 없어진 것도 아닙니다. 다만 고요함이 사라졌을 뿐인데, 비출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 연못과 다르지 않습니다. 걱정이 쌓이고, 비교가 시작되고, 조급함이 더해지면 마음의 수면은 끊임없이 출렁입니다. 그 상태에서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봐도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흔들린 상이 '나'라고 착각한 채, 그 왜곡된 모습에 다시 놀라고, 또 흔들립니다.

친구가 밤마다 이불 속에서 시나리오를 돌리는 것도 그런 이치였습니다. 문제를 풀려는 마음이 오히려 수면에 돌을 던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이 또 다른 걱정을 만들어내면서 연못은 잠잠해질 틈을 잃었습니다.

절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큰스님과 짧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친구는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이 정리될까요?" 스님은 대답 대신 찻잔을 두 개 꺼냈습니다. 하나에는 맑은 물을, 다른 하나에는 설탕물을 가득 따랐습니다. 그리고는 두 잔에 각각 한 방울씩 먹물을 떨어뜨렸습니다.

설탕물에 떨어진 먹물은 빠르게 퍼졌고, 맑은 물에 떨어진 것도 서서히 번졌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맑은 물은 먹물이 가라앉으며 다시 투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설탕물은 끝까지 탁한 채로 남았습니다. "욕심이 많은 마음은 설탕물과 같습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무언가 자꾸 더 보태려 하면, 마음이 스스로 맑아질 공간이 없어요."

담백함이란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에 불필요한 것을 잔뜩 녹여두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마음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여백을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 여백이 있어야 흔들림이 지나간 뒤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구는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 나 요즘 새벽에 잠깐씩 산책을 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근데 그때만 머리가 좀 맑아지는 것 같더라고."

그는 친구의 그 말이 반가웠습니다. 친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답을 찾으러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생각을 내려놓기 위해 걷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고요함은 문제를 없애주지 않습니다. 다만 흔들리지 않는 수면처럼,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춰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왜곡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길의 시작이니까요. 복잡함에 대한 해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마음의 연못을 고요히 두는 것, 거기서부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