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겨울 저녁, 두 사람이 같은 골목을 걷고 있었습니다. 가로등은 하나가 꺼져 있었고, 바람은 매섭게 불었습니다. 한 사람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외투 깃을 세웠지만, 얼굴엔 묘한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골목 끝의 그림자가 자꾸 무언가처럼 보였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왠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두 사람이 걷는 길은 같았지만, 그들이 경험하는 세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기분이 나쁘면 날씨 탓을 하고, 불안하면 세상이 험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세상은 때로 정말 어둡고, 날씨는 실제로 우리의 기분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똑같이 흐린 하늘 아래서도 어떤 사람은 빗소리를 음악처럼 듣고, 어떤 사람은 그 빗소리에 온갖 걱정이 증폭됩니다. 외부의 조건은 같은데, 내면의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나는 한때 유독 모든 것이 뒤틀려 보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동료가 건넨 짧은 인사말 하나가 비꼬는 것처럼 들렸고, 친구의 연락이 뜸해지면 이유를 멋대로 지어냈습니다. 세상이 나를 향해 작은 적의를 품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 시절 나는 스스로에게 몹시 불정직했습니다. 피곤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두렵다는 감정을 숨기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렸습니다. 마음속에 탁한 것들이 가득 찼을 때, 세상도 덩달아 탁해 보였던 것입니다.
선불교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스님이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네 눈에 진흙이 묻어 있으면, 흰 벽도 어떻게 보이느냐?" 제자가 답했습니다. "더럽게 보입니다." 스님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벽에 있느냐, 눈에 있느냐."
마음이 맑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언제나 긍정적이어야 한다거나, 고통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슬플 때 슬프다고 인정하고, 모를 때 모른다고 말하고, 틀렸을 때 틀렸다고 받아들이는 것,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함입니다. 그 정직함이 내면을 투명하게 만들고, 투명한 마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자극을 받습니다. 알림음이 울리고, 뉴스는 쉼 없이 흘러가고, 타인의 삶이 화면 속에서 반짝입니다. 이 홍수 속에서 사람들이 지치는 이유는 단순히 정보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외부를 향해 시선을 두다 보면, 정작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의 탁함은 방치될수록 쌓이고, 쌓인 탁함은 세상을 더 복잡하고 위협적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다시 그 겨울 골목으로 돌아가 보십시오. 여유롭게 걷던 사람이 특별히 용감하거나 삶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는 자신의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피곤함을 피곤함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 투명함이 그에게 어두운 골목에서도 작은 등불 하나를 켜주었습니다.
세상의 빛은 하늘에서만 오지 않습니다. 때로 그 빛은,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먼저 켜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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