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라"(전도서 7:8)
어느 늦가을 저녁, 오랜만에 찾은 고향집 마루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당 한쪽에 심어진 감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봄에는 새순을, 여름에는 짙은 그늘을 내어주던 그 나무가 이제 온통 주황빛 감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기억할 때 봄의 연두빛 잎사귀를 떠올릴까요, 아니면 지금 이 풍성한 가을 열매를 떠올릴까요?
우리는 감나무가 감으로 기억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봄과 여름을 아름답게 보냈다 해도, 가을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나무의 가치는 반감됩니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을 평가할 때 그의 학벌이나 경력, 젊은 시절의 화려한 업적을 먼저 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진정으로 그 사람을 기억하게 만드는 건 다른 것입니다. 바로 그가 어떻게 삶을 마무리했는가입니다.
역사 속 인물들을 떠올려보면 이 진리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젊은 날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이들 중 누군가는 말년에 탐욕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반면, 평범하게 살다가도 생의 마지막 순간 보여준 용기 있는 선택 하나로 역사에 길이 남은 이들도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끝'입니다. 어떻게 마쳤는가가 어떻게 시작했는가보다 훨씬 큰 울림으로 남습니다.
"이미 지나간 세월을 어찌하겠어요. 저는 젊은 날을 허송세월로 보냈는걸요." 이런 한탄을 하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과거의 잘못이나 후회로 지금의 자신을 가두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인생은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젊은 시절 방황했다 해도, 지금부터 마음을 바로잡고 올곧게 산다면 그 앞선 삶은 오히려 성장의 밑거름이 됩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도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젊어서는 제멋대로 살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고 나서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볼 때 우리는 과거의 방황이 아니라 지금의 변화된 모습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진심이라면, 과거는 더 이상 짐이 아니라 이야기가 됩니다.
중요한 건 '지금'입니다.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가, 그것이 당신 인생 전체의 의미를 새롭게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조심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 절개를 지키고 원칙을 지켜온 사람이 마지막 순간 무너지는 경우입니다. 이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습니다.
30년을 정직하게 일한 공무원이 퇴직을 앞두고 한 번의 유혹에 넘어가 모든 것을 잃는 일, 평생 신뢰를 쌓아온 사업가가 노년에 욕심을 부려 명예를 잃는 일, 가정을 지켜온 사람이 말년에 다른 선택을 해서 가족들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 이런 일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간의 고난과 인내, 묵묵히 쌓아온 신뢰가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마치 오랜 시간 공들여 쌓은 탑이 마지막 돌 하나 잘못 놓아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더 가혹한 건, 사람들이 그 30년의 선행보다 마지막 1년의 실수를 더 강하게 기억한다는 사실입니다.
사계절을 생각해봅니다. 봄의 따스함도, 여름의 푸르름도, 가을의 풍성함도 모두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유독 사람들이 어느 해를 기억할 때는 "그해 겨울이 참 추웠지" 혹은 "그해는 겨울이 따뜻했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계절인 겨울이 그 한 해 전체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봄, 여름, 가을을 어떻게 보냈든,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고 평가하는 건 그 사람의 '겨울', 즉 후반부의 삶입니다. 어떤 태도로 나이 들어가는가, 어떤 선택으로 삶을 마무리하는가가 그 사람의 진가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먼저,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 날의 실수나 방황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바로잡으면 됩니다. 마지막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정직하게, 진실하게 살아간다면 당신의 과거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해서 방심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는 원칙,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유혹은 언제나 있고,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더 바르게, 더 진실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시간이, 당신 인생 전체를 규정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녁 무렵, 다시 그 감나무를 바라봅니다. 이제 곧 찬바람이 불면 잎은 모두 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주황빛 감들은 한동안 그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열매를 보며 "올해도 감나무가 제 역할을 다했구나"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인생이라는 계절이 끝날 때,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는 건 화려했던 시작이 아닙니다. 끝까지 지켜낸 것들,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태도가 우리라는 사람을 말해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내일도, 마지막 그날까지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 순간이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가장 분명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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