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언제부턴가 너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가득해졌습니다. 머릿속 필터가 작동하지 않거나, 아예 없는 듯 보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이 말보다 느리고, 어떤 사람은 마음이 말보다 무겁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말이 빠르고, 마음보다 입이 가볍습니다.
그들은 떠오르는 대로 내뱉습니다. 그것이 진심인지, 사실인지, 혹은 누군가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지 않습니다. 그저 말할 뿐입니다. 아니, 소리칠 뿐입니다. 그들의 언어는 마치 적나라한 가십의 사체처럼 썩은 냄새를 풍기며 퍼져 나가고, 듣는 이를 병들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말들에 굶주린 사람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그들 틈에서 말은 점점 진실로 둔갑합니다. 반복되면 믿음이 되고, 동의가 모이면 ‘공동의 판단’이란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말은 곧 사람입니다. 사람이 말 따로, 행동 따로일 수 없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내면을 가장 먼저 배반하는 도구입니다. 우리가 내뱉는 말 속엔 우리가 현재 어디에 동의하고,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누구를 향해 서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깁니다. 그래서 말은 곧 ‘나’이며, 나의 오늘을 드러내는 영적 자화상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말의 기질은 다릅니다. 어떤 이는 유려한 언변으로 주목받고, 어떤 이는 조용한 침묵으로 지혜를 지킵니다. 우리 역시 말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나름 재치도 있고, 이야기로 사람을 웃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말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가 진실하게 말한 것들이, 우리가 믿고 내어 보인 마음들이, 오히려 공격의 빌미가 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말은 필터가 필요한 도구입니다. 처음엔 그 필터가 헐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점점 그 필터의 밀도와 강도를 높여갑니다. 그것이 예의와 배려의 훈련이며, 나아가 신앙 안에서 성화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필터가 ‘세상의 기준’에 순응한 결과라면, 그저 자기검열로 끝나버립니다. 진리를 향한 검열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향한 회피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말 실수라기보다는, “다름”의 표현이 실수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세상은 기준 없이 떠들고, 말의 무게를 책임지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말합니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더라”라는 이야기 속엔 근거도 없고, 책임도 없습니다. 다만 무료함을 채울 수 있다면, 누군가를 한껏 까내리는 재미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세상입니다.
그러니 말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가 내 믿음을 드러내는 일이라면, 내 언어가 곧 내 마음의 무게라면, 어찌 함부로 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침묵 역시 온전한 해답은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실수를 피하려는 건, 어쩌면 아직 미성숙의 대처일 뿐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말해야 할 순간에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진실을 침묵으로 회피하면, 결국은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 됩니다.
말은 제한된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며, 그 말은 반드시 ‘내 안의 진실’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세운 가치와 태도가 말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말의 기원을 묻습니다. 그 말은 왜 시작되었는가? 시기심 때문입니까? 비교심에서 출발했습니까?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누군가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그를 향한 적대감을 품게 되었습니까? 그러면 그 입술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를 해하는 칼이 됩니다. 도마 위에 올려 놓고 회를 뜨듯, 사람의 인생을 자르고 난도질하는 흉기가 됩니다. 말은 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칼의 끝을 반드시 물으십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쉽게 말하는가? 무엇이 내게 그런 당당함을 부여하는가? 정말 나는 그 말의 무게를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진실로 겸손한 사람은 쉽게 남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일수록, 말하기를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내 안의 상처, 죄성, 부끄러움이 그 말 앞에 방패처럼 서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지경인데, 누굴 평가하겠는가. 나도 은혜로 서 있다면, 말은 곧 나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말은 타인을 향한 창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내 마음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은 너무 쉬워선 안 됩니다. 너무 쉬운 말은 생명을 잃습니다. 너무 가벼운 말은 그리스도의 무거운 십자가를 모욕합니다. 그래서 입을 열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주여, 내 입술을 지켜주소서. 내 말이 주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지니라.”(전도서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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