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브리서 4:12~13)
히브리서 4장 12~13절은 너무나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말씀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이 말씀은 우리를 위로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를 해부합니다. 말씀은 포근한 담요가 아니라, 메스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상처를 덮어주기 전에, 먼저 그 상처를 정확히 드러냅니다.
순종은 ‘잘함’이 아니라 ‘비워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광야의 이스라엘을 예로 들며 경고합니다. 그들은 불순종으로 멸망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순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몇 가지를 잘 지켜내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믿음이고, 믿음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이 선물이라는 말은, 곧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고백입니다. 내 안에는 하나님을 신뢰할 능력도, 순종할 자격도 없다는 사실이 먼저 폭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우리를 찌릅니다. 관절과 골수, 혼과 영을 찔러 쪼갭니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말씀은 실제로 우리 존재를 해체합니다.
말씀은 왜 우리를 쪼개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도구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말씀은 곧 생명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는 ‘수술’처럼 작용하는가?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는 죽을 병에 걸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우리 안에 들어와 묻습니다. “여기에는 죄가 없느냐?” “이 생각은 누구로부터 왔느냐?” “이 열심은 정말 하나님을 향한 것이냐, 아니면 너 자신을 향한 것이냐?” 말씀은 우리를 기분 좋게 띄워 올리지 않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벌거벗깁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 창조를 시작합니다.
광야의 율법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율법을 받은 이유는, 그 율법을 완벽히 지켜 살아남으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은 거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불가능한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도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지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 광야의 죽음조차도 하나의 모형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가나안도 참된 안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역사는 그림이었고, 스케치였습니다. 우리의 인생 역시 하나님의 스케치북입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자신의 은혜와 능력,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그리고 계십니다.
성숙의 기준은 ‘변화’가 아니라 ‘자각’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성숙을 잘못 가르칩니다. 얼마나 착하게 사는가, 얼마나 헌신하는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가로 신앙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말씀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말씀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자기 안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자신의 모든 스펙과 경건과 열심을 “배설물”이라 여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배설물을 모아 성숙의 증거라고 내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믿음과 행함은 삶 속에서 충돌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을 낳습니다. 그러나 그 행함조차도 우리를 의롭게 하지 못합니다. 어떤 날은 예수의 마음으로 열심히 살게 하시고, 어떤 날은 완전히 무너진 자리로 끌고 가십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한 가지를 가르치십니다. “너는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참된 성도입니다.
히브리서 4장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말씀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경건도, 열심도, 신학 지식도 모두 벗겨집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정보를 얻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말씀을 통해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알게 되고, 그 자리에서 예수께 매달리게 되는 것이 참된 신앙인 것입니다.
말씀이 당신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것은 말씀이 제대로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말씀이 당신을 해부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 서십시오. 변명하지 말고, 꾸미지 말고, 벌거벗은 채로 서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님, 은혜가 아니면 저는 살 수 없습니다.” 그 고백 위에 하나님은 반드시 새 창조를 시작하십니다.
'히브리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젖을 먹는 자와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자 (0) | 2025.12.28 |
|---|---|
| 대제사장 예수 (1) | 2025.12.21 |
| 이미 주어진 안식, 그러나 아직 들어가야 할 안식 (0) | 2025.12.07 |
| 오늘이라는 은혜 (0) | 2025.11.30 |
|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 (0) | 2025.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