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모든 것에는 원인과 이유가 있다. 시련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당신이 좌절을 맛봐야 하는 이유이다."
모든 일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습니다. 힘든 시련의 시기를 겪을 때 당장은 그것을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시련에도 이유는 존재합니다. 때로는 어떤 일이 일어난 지 한참 후에야 이유를 알게 될 때도 있고, 영원히 모를 때도 있습니다.
어둠의 시간 속에서 좌절을 맛볼 때 우리는 세상을 원망하고 의심하며 고통받는 상황에만 집착한 나머지 자신이 이러한 시련을 겪는 이유를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혹은 이유를 찾는 데만 너무 집착하다가 결국 스스로 무능력하다는 열등감에 빠져 주저앉아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라는 믿음을 갖고 자기 자신을 초월할 때 비로소 진정한 치유가 시작됩니다.
시련 앞에 설 때 우리는 자주 되묻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마치 이유를 안다면 고통이 줄어들 것처럼, 혹은 설명이 붙으면 견딜 수 있을 것처럼 우리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유를 찾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하나님은 그 이유를 곧바로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침묵 가운데 우리를 두시고, 고요한 어둠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조용히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욥은 아무 잘못 없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도 오랜 시간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면서도 채찍과 돌에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그 시련의 이유를 처음부터 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고, 동시에 하나님께 향한 신뢰를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 삶에 닥치는 시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의 해고, 가족의 질병, 관계의 단절, 예상치 못한 실패… 이 모든 고통의 순간은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우리가 고통을 이겨낸 다음에야, 혹은 영원히 주님 앞에 서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신비로 남기도 합니다. 시련은 단지 고통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금의 나’가 아닌 ‘하나님께서 빚으시는 나’로 이끌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다 끝내 이유 없는 실패와 죄책감에 빠져버리기도 합니다. “내가 무능해서 이런 고통을 겪는 걸까?”,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는 걸까?”라는 생각에 잠식되면, 시련은 성장이 아니라 파멸의 길이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녀를 짓밟기 위해 시련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사랑으로 우리를 훈련하시고, 다듬으시고, 빚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시련의 이유를 찾는 데에 집중하기보다 그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 위에서 한 걸음씩 나아갈 때, 시련은 우리를 넘어뜨리는 장애물이 아니라, 더 큰 믿음으로 도약하게 하는 디딤돌이 됩니다.
시련을 겪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가장 깊이 뿌리내리는 시간, 눈물이 기도가 되는 시간, 무너진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어지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묻지 말아야 할 이유를 억지로 알려고 애쓰기보다, 그 시련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시련은 축복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깨어집니다. 그리고 깨어진 그릇 위에 하나님의 형상이 새롭게 새겨집니다. 그러니 오늘, 눈물 속에서도 믿음으로 고백해 보십시오.
“주님, 이유를 다 알지 못해도, 저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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