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감정의 충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우리는 이미 수많은 ‘말’ 속에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내 마음 안에서. 누군가는 그 속에서 평안과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누군가는 같은 하루를 불만과 분노로 시작합니다.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될까요?
박재연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소장은 “행복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행복은 ‘상황’이 아니라 ‘태도’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문제를 만났을 때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하지?”가 아니라 “이 상황에도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이 한마디는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놀라운 힘을 가집니다. 이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어려움에 ‘갇히지’ 않습니다. 정서를 스스로 조절하며,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 애씁니다. “이 시기에 가족들이 더 가까워졌어.” “더 아프지 않은 것만도 감사해.” 그들의 언어에는 언제나 ‘감사’와 ‘가능성’이 함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항상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힘들고, 슬프고, 때로는 불안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피하지 않고, 그 감정의 바탕에 있는 ‘욕구’를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다른 길, 다른 방법을 찾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한 사람들의 정서 전략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은 다릅니다. 낙천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박 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은 훈련이다.” 설사 우울한 기질을 가졌더라도, 혹은 어린 시절 부모의 비난과 냉소 속에서 자랐더라도, 그 배경이 ‘현재의 나’를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배우고 변화할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직장인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그는 늘 화내는 상사 밑에서 일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상사의 화를 자신에게 돌리고 자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달랐습니다. “나 때문인가?” 대신 “무슨 일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한마디의 ‘물음표’가 상사의 마음을 바꾸고, 둘의 관계를 회복시켰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보여준 ‘긍정의 태도’였습니다. “힘들어도 방법이 있을 거야.” 그 말이 그의 내면에 ‘훈련된 행복’의 근육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불행은 대부분 마음속에서 자라납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계속 떠오르고, 그때 느꼈던 수치나 분노가 현재의 순간까지 침투합니다. 그러다 보면 “앞으로도 나는 계속 불행할 거야”라는 영속적 신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박 소장은 이때 필요한 것은 ‘좋은 말 주입’이 아니라 ‘털어내기’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비우지 않은 채 긍정적인 말을 아무리 쌓아도
그건 결국 덮어둔 쓰레기와 같습니다. 먼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솔직히 털어놓고, 그 고통이 흘러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훈련이 있습니다. “안정적인 사람 곁에 있기.” 감정은 전이되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일수록 평온한 사람 옆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방향이 바뀔 수 있습니다. 행복은 결국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자라나는 것입니다.
불만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목표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더 잘해보자”가 아니라 “욕 먹지 말자”, “실수하지 말자”를 목표로 삼습니다. 그래서 성공해도 기쁘지 않습니다. 그저 잠시 ‘안심’할 뿐입니다. 이들은 또한 타인의 말을 왜곡해서 듣습니다. 호의조차 불신으로 번역하고, 칭찬조차 숨은 비난으로 읽어냅니다. 그 까닭은 현재의 대화 속에서도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나를 무시해.” “결국 다 떠날 거야.” 이런 신념들이 지금의 관계를 병들게 합니다.
행복한 관계를 위한 첫걸음은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속일 거라는 증거는 생각보다 거의 없습니다. 박 소장은 ‘비폭력 대화’의 언어를 소개합니다. 모든 말은 “부탁(Please)” 혹은 “감사(Thank You)”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 지랄이야”라는 말은 “우리 딸, 돈을 아껴서 필요할 때 써주렴”이라는 부탁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번역기를 바꾸면 적대적인 말 속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대화의 회복이며, 행복으로 가는 언어의 전환점입니다.
공격적인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방어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래?” “나한테 왜 이래?” 하지만 박 소장은 말합니다. “공격은 고통의 표현입니다.” 그 사람은 지금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지 못해공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필요한 태도는 ‘판단’이 아니라 ‘연민’입니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이 문장 끝의 마침표(.)를 “저 사람은 왜 그랬을까?”라는 물음표(?)로 바꾸는 순간, 갈등은 비로소 풀리기 시작합니다. 물음표는 상대에게 다가가게 하고, 마침표는 벽을 세웁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언제나 물음표로 대화합니다. 그 물음표 안에는 이해, 연민, 그리고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결국 행복은 어떤 특별한 기술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 마음이 세상을 바라보는 습관입니다. “방법이 있을 거야.” “이만 하길 다행이야.” “저 사람은 왜 그랬을까?” 이 짧은 문장들이 우리 인생의 방향을 바꿉니다. 삶의 무게는 변하지 않아도, 그 무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 우리는 훨씬 가볍게 걸을 수 있습니다.
행복은 나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는 연습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오늘 내가 던지는 단 하나의 물음표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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