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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 말씀

물처럼 흘러드는 하늘의 평강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30.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에베소서 1:2)

누군가 편지를 보내면, 우리는 보통 첫 문장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느낍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쓴 이 편지의 서두에서도 그렇습니다. 그저 평범한 인사 같지만, 그 인사 속에 천국이 담겨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짧은 문장은 바울이 감옥에서 써 내려간 하늘의 시입니다. 땅의 사슬에 매인 몸이지만, 그는 하늘을 누리고 있었고 그 하늘의 것을 성도들에게 나누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서의 구조를 보면 1~3장은 '
복음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리고 4~6장은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선언과 교훈 앞에 바울은 '은혜와 평강'이라는 복음의 핵심을 놓고 시작합니다. 이 시작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복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되고, 하나님과의 평화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온 인사말이 땅 위의 현실을 찌른 것입니다.

샬롬은 그냥 고요가 아닙니다. '
에이레네'의 깊은 물결입니다. ‘평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샬롬, 헬라어로는 에이레네입니다. 단순한 전쟁 없음, 갈등 없음, 혹은 편안한 생활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원수되었던 자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이제는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살게 되는 새로운 상태입니다. 그것은 정적이 아니라 역동적인 연합입니다. 고요가 아니라, 싸움 끝에 찾아온 사랑의 끌어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평강을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감정적인 안정감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화해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존재의 근거에서 흐르는 안식입니다. 이 평강은 '상황'에 따른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였지만, 이제 그 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평강은 단지 외적인 조건의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품에 안긴 내적 쉼입니다.

성경은 단호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원수입니다(롬 5:10).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고, 그 사이에 평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편지에서, 그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빌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 1~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이 짧은 인사 속에 십자가의 복음이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바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고, 수신자인 성도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된 자들이며, 그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와 평강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사 9:6)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평강은 값싼 위로가 아닙니다. 십자가 위에서 살을 찢기고 피 흘리심으로 만들어진 피의 평강입니다. 우리의 평안은 예수의 고난 위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기독교인은 말합니다. "그 분이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성경은 평강에 대해 경고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들을 이렇게 책망합니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14) 인간이 만든 평안은 환상입니다. 환경이 좋아지고, 몸이 낫고, 소원이 이루어지고, 사업이 잘 되는 것이 평강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자주 종교적 요술램프처럼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고, 문제 없고, 모든 게 술술 풀릴 것이라는 메시지에 사람들은 열광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요 14:27) 예수로 인해 오히려 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눅 12:51~53). 예수로 인해 오히려 불편해지고, 고통스러워지고, 사람들과 갈등하게 되는 그 삶 가운데서도 잔잔히 흐르는 기쁨과 담대함이 진짜 평강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선언합니다. 이 평강은 공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좋은 사람에게 주는 보상이 아닙니다. 단지 주어지는 것입니다. 전적인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으로 뚫고 들어오십니다. 어두운 마음속에, 두려움 가득한 현실 속에, 한줄기 찬란한 빛처럼 하나님의 평강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원하거나 준비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평강을 창조하시고 선물로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사 45:7) 그 분이 짓습니다. 그 분이 주십니다.

어느 청년이 있었습니다. 법을 살짝 어기면 좀 더 수월하게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었던 상황,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민했고, 눈물 흘렸고, 결국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 결정이 주는 현실적 손해는 컸지만, 그는 잃은 것보다 더 큰 것을 누렸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그 평강은 단순히 감정을 넘어섭니다. 손해를 보았지만 기쁨이 있었고, 외로웠지만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란, 삶이 흐트러져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기준에서는 찬란한 지혜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골 3:15) 하나님과 화해한 자들은, 이제 서로와도 화해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평강은, 반드시 사람 사이의 수평적 평강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복음은 혼자 누리는 기쁨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함께 누리는 평강입니다.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눈을 피하지 않으시고, 우리도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평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 평강을 누리고 계십니까? 눈물이 있지만 평강이 있고, 손해가 있지만 담대함이 있고, 거절당했지만 기쁨이 있다면, 당신은 지금 그리스도의 평강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평강,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선물 앞에서, 오늘도 감격하며 삽시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