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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속으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26.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9)

우리는 종종 ‘
화평’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갈등 없는 상태, 싸움이나 소란이 없는 조용하고 안정된 상태를 떠올립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라 함은 일반적으로 갈등을 중재하고 사람 사이의 평화를 도모하는 이들을 지칭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훨씬 더 깊고 본질적인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인간관계의 조율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맺어진 ‘화평’을 살아내는 존재입니다.

세상은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전쟁이 없는 상태, 정치적 안정, 사회적 조화, 이 모든 것을 평화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외적인 평화를 넘어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참된 화평의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고(롬 5:10), 그 누구도 스스로 화목할 수 없었습니다. 이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사야 9장 6절은 예수님을 “
평강의 왕”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에게 가져오신 평강은 단순한 위로나 감정의 안정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은 말합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을 자기와 화목하게 되게 하셨으니”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이 ‘
화평’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깊은 원수 관계를 끝내고, 다시 생명의 교제를 가능케 한 신적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자’라는 말씀은 곧 십자가로 화목케 된 자를 뜻하며, 나아가 십자가의 삶을 살아내는 자를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우리에게 화평의 삶이 무엇인지 말해줍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하나님과의 화평은 나의 의, 나의 주도권, 나의 감정, 나의 인생계획이 내려놓아질 때 시작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결단이 아닌, 실제적 ‘
자기 부인’이며, 십자가의 피 묻은 길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이 신비는 단순한 이상이 아닌 성도의 현실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평 속에서 살게 되고, 이 화평이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
화평하게 하는 자’란 곧 자기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사는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 그 복음을 전하고 살아내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이 말씀이 무척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이 왜 검을 가져오셨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세상의 거짓된 평화를 깨뜨리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타협적인 평화, 외식적인 화목, 진리 없는 조화에 안주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평화를 허물고, 진리로서 오셨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분열을 낳습니다. 빛이 어둠을 뚫고 들어올 때, 반드시 어둠은 요동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세상의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가족 간에도, 친구 사이에서도, 사회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은 칼처럼 작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따라 화평을 전하는 자들로 부름받았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하나님과 화목된 자는 다시 세상 속으로 보내집니다. 그 직책은 단순히 ‘
좋은 말로 위로하는 역할’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그것을 삶으로 드러내는 사명입니다. 이 사명은 말보다 고난이 많고, 인기보다 외로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된 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단순한 신분을 넘어, 그분의 본성과 뜻을 나누는 자, 그분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닮은 자, 곧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평화를 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목 속에 거하며, 그 화평을 삶으로 살아내는 십자가의 증인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교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일터 안에서, 나아가 세상 가운데서 십자가를 짊어진 삶을 살아가며,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 길은 넓지 않습니다. 칭찬도 적습니다. 그러나 그 길 끝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안다.” 이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화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