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4:27)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띄웠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큰 바람과 파도가 덮쳤습니다. 그 풍랑 속에서 주님은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놀란 제자들에게 주님은 단순히 한마디 하셨습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바로 이 원리와 같습니다. 풍랑은 우리의 죄로 인한 심판을 상징합니다. 모든 죄인은 결국 그 바다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끝내 빠져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풍랑 속에 ‘세례’처럼 푹 잠기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자리를 대신하신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저주의 물에 맞아 죽었지만 그 안의 여덟 식구가 살아났던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익사하심으로 우리에게 물 위를 걷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접한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동행자가 아니라, 이미 우리 대신 풍랑 속에 빠져 죽으신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풍랑은 여전히 찾아옵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데도, 오히려 삶이 더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 믿음을 시험하시고 세우시는 과정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환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폭풍을 만나 허우적거리는지, 아니면 그 위를 걸으며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는지를 지켜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 속에 닥치는 폭풍은 저주가 아니라, 우리 안의 믿음을 증명하고 단련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죄와 마귀에게 사로잡힌 노예 상태일 뿐입니다. 참된 자유는 내 인생의 방향키를 주님께 맡기는 데 있습니다. 배의 키를 붙잡고 제멋대로 노를 젓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조종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평안과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 부르심은 방종의 자유가 아니라, 죄의 굴레에서 벗어난 참 자유의 초대입니다.
우리의 눈앞에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지만, 믿음은 그 풍랑 너머를 바라보게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바다가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그날, 죄와 심판의 바다는 영원히 사라집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풍랑이 있는 세상에서 믿음으로 물 위를 걸어야 합니다.
그러니 어떤 풍랑이 닥쳐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이끄시는 과정입니다. 풍랑은 우리를 삼키기 위함이 아니라, 믿음을 드러내고 단련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예수님은 내 대신 풍랑 속에 빠져 죽으셨습니다. 그분을 영접한 나는 이미 물 위를 걷는 자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풍랑이 이는 이유는 내 믿음을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마지막 날, 우리는 바다가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이 말씀 붙잡고 오늘도 풍랑 위를 믿음으로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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