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도서 11:1)
지민은 스물여덟 살이었습니다.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3년을 버텼고, 통장 잔액은 안정적이었으며, 커리어 로드맵도 나름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회사 근처 편의점 앞에서 우연히 한 장의 전단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에서 자원봉사 교사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토요일마다 가르치는 거잖아. 아무 보수도 없고.' 그는 전단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동안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했습니다. 이득이 없었습니다. 이력서에 한 줄 추가될 수는 있겠지만, 토요일 오전을 통째로 내주는 것은 분명히 손해였습니다. 친구들은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부업을 하거나, 그냥 잠을 잤습니다. 지민도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결국 신청서를 냈습니다.
전도서 11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처음 이 말씀을 읽는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떡을 물에 던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젖고, 불고, 떠내려갑니다. 먹을 수도 없고, 돌려받을 수도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이건 그냥 낭비입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그것을 하라고 합니다. 일부 번역 성경은 이 구절을 "무역에 투자하라, 이윤을 남길 것이다"라고 옮겼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시대의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2,500년 전 본문에 억지로 끼워 맞춘 번역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원문 어디에도 투자, 이윤, 수익이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전도자는 이미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려 본 사람이었고, "돈을 사랑하는 자는 돈으로 만족함이 없다"고 스스로 고백한 사람이었습니다(전 5:10). 그가 말하는 것은 재테크 전략이 아닙니다.
그는 훨씬 더 근원적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모험적인 선택이, 때로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됩니다. 우리 세대는 계산에 능합니다. "이게 나한테 뭐가 남아?" 라는 질문은 이제 습관이 되었습니다. 인간관계도 ROI(투자 대비 효과)로 따지고, 봉사도 스펙으로 환산되어야 하고, 헌신도 어딘가 돌아오는 것이 있어야 정당화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호구'가 된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손해 보지 않는 삶, 손해 보지 않는 관계, 손해 보지 않는 선택, 이것이 현명한 삶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계산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눈에서는 점점 빛이 꺼집니다. 무언가를 잃지 않으려고 꽉 쥐고 있는 손에는, 새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동대학교가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했을 때, 온누리교회는 아무런 조건 없이 거액의 헌금을 드렸습니다. 당연히 교회도 쉽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것이 없어 보이는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하용조 목사님이 그 일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한동대학교를 도와준 만큼 우리의 마음이 더 커진 것입니다." 보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이윤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확장이었습니다. 더 넓어진 그릇이었습니다. 어떤 재무제표에도 기록되지 않는 종류의 축복이었습니다. 떡이 떡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다른 무언가로 돌려보내십니다.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지민이 그 대안학교에서 보낸 첫 토요일은 솔직히 말해 혼돈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았고, 수업은 엉망이 되었으며,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그는 속으로 '왜 했지'를 두 번 되뇌었습니다. 그런데 세 달이 지난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열다섯 살 아이 하나가 교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쭈뼛거리다가 그 아이가 건넨 것은 구겨진 종이 한 장이었습니다. "선생님한테 처음으로 글 써봤어요." 지민은 지하철 안에서 그 편지를 읽다가 울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칸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물 위에 떡을 던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찾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이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피부로 느껴지는 체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전도자는 인생을 연역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인생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고 먼저 결론을 내리고 증명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는 수많은 시도와 실패와 의외의 발견을 통해 귀납적으로 고백합니다.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떤 신학 체계도, 어떤 자기계발 공식도, 어떤 재테크 전략도 담아낼 수 없는 인생의 신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떡을 물 위에 던져 본 사람만이 아는 세계입니다. 계산이 끝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보상이 없어 보이는 곳에 삶을 던질 때 비로소 경험되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손에 떡이 있습니까? 그것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무모해 보입니까? 그렇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모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습니다.
은혜를 갚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은혜를 잊었다는 증거이다. -블레즈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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