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누가복음 19:26)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오셨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눈앞에서 즉시 펼쳐질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 기대 속에서 예수님은 한 가지 비유를 덧붙이십니다. 바로 므나의 비유입니다. 하지만 이 비유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은사와 재능을 잘 활용해 하나님께 칭찬받자”라는 단순한 교훈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오해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달란트 비유나 므나 비유를 말하면,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능(talent)”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의 ‘달란트’와 ‘므나’는 그저 화폐 단위였지, 오늘날의 능력(talent)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단어의 유사성을 끌고 와 “하나님이 준 은사를 잘 활용하지 않으면 책망 받는다” “열심히 쓰고 성공적으로 결과를 내면 칭찬 받는다”라고 해석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해석은 성경의 원래 의도가 아닐 뿐 아니라, 수많은 성도들에게 쓸데없는 죄책감과 비교의 마음을 안겨왔습니다. "나는 어떤 은사를 받았는가? 나는 열매를 맺었는가? 하늘에서 상급 받을 만큼 잘했는가?" 사실 대부분의 성도는 자신에게 어떤 은사가 있는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 땅에서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이, 거지 나사로처럼 평생 가난과 질병 가운데 눈물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과연 “상급 없는 인생”일까요? 하늘에서조차 초라한 자들일까요? 복음은 그런 식으로 사람을 나누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경쟁과 비교를 떠올립니다. 상은 누군가보다 더 나아야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높은 성취, 더 큰 열매, 더 멋진 사역… 그래서 누군가는 천국에서도 “등급”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절대 만족과 절대 행복이 충만한 곳입니다.
비교와 경쟁이 존재할 수 없는 곳, 누군가는 더 누리고 누군가는 덜 누리는 그런 장소가 아닙니다. 만약 천국에서도 상급이 있어 부자가 있고 가난한 자가 있다면, 그곳은 이미 천국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관념 자체가 아직도 세속적 성공주의의 그림자를 벗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7장에서 종은 주인이 시킨 일을 행해도 “상 받을 자격”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종의 정체성은 성취가 아니라 주인에게 속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의 뜻에 참여하는 것이 은혜이지, 그 일을 근거로 상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므나의 비유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 비유는 ‘능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비유의 초점은 종의 능력이나 생산성이 아니라 ‘주인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어떤 종은 주인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자유롭게, 맡겨진 것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한 종은 주인을 두려운 존재,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으로 오해했습니다. 그 오해 때문에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주인의 성품을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가 말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오해하면, 우리의 삶 전체가 왜곡된다. 반대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면, 우리는 자유와 기쁨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게 됩니다. 므나를 많이 남긴 종들이 칭찬을 받은 이유는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주인을 기쁘게 신뢰하는 마음으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은 ‘이미 왔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곧바로 하나님 나라가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 왕은 먼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존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현재적 현실이면서도, 주인이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미래적 나라입니다. 이 비유는 그 중간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왜곡된 하나님 이해 속에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유와 신뢰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을 두려움의 주인으로 알면 신앙은 마릅니다. 하나님을 은혜의 아버지로 알면 신앙은 꽃핍니다. 므나의 비유는 “열심히 일해서 상급을 받으라”는 율법적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우리 마음에 던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엄하고 까다롭고 성과를 따지는 주인으로 알고 있다면, 우리의 신앙은 늘 두렵고, 비교 속에 갇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나의 연약함을 아시며, 기쁨으로 우리와 동행하시는 아버지로 알고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하나님 나라를 살아낼 수 있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 자유가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주인이 다시 오시는 날 칭찬을 듣게 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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