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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믿음의 내용 -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삶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25.

우리는 누구나 ‘믿음으로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GPS를 켜 두었지만 목적지가 찍혀 있지 않은 것처럼, 신앙생활의 방향이 흐릿해지면 결국 눈앞의 것들에 이끌려 헤매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사는가?”, 다시 말해 믿음의 내용을 살펴보려 합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연구했지만, 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을까요?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누구보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과 예언서를 외우고, 매일 토론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의 핵심, 성경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연구했지만 ‘
성경의 목적’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자기 영광을 구했습니다. 말씀을 연구하면서도 말씀 안에 담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자기 만족, 자기 의, 자기 성취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결과,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눈앞에 두고도 영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이 질문은 유대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도 “
믿는다”고 말하지만, 무엇을 믿는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하나님이 그를 3일 만에 부활시키셨고,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셨고, 성령 받은 사도들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기 시작했으며,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역사의 큰 흐름입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언약의 흐름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질문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정말 다시 오실 주님을 믿고 살고 있나요?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
다시 오실 예수님’을 향해 달려갑니다. 성경의 마지막 고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이것이 성경의 결론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소망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이미 종말의 때를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요엘서가 예언한 성령의 부으심은 말세의 사건이며, 사도행전 2장은 그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성령이 임한 성도라면 당연히 종말론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가게 됩니다.

초대교회가 보여준 종말의 영의 증거는 이렇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초대 성도들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마음에 경외가 임하고,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재산을 팔아 나누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모이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을 가졌으며, 하나님을 찬미하며, 구원받는 자가 더해졌습니다. 이런 모습은 단순한 ‘
열정적인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종말이 임했음을 아는 사람들의 삶이었습니다. 이 땅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진짜로 믿는 사람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
주님 다시 오심’을 잊고 사는 것일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점점 역사 속에 파묻히게 됩니다. 주님의 약속은 멀게 느껴지고, 이 세상의 현실은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그 결과 보이는 성공이 더 중요해지고, 보이는 안정이 더 소중해지고, 보이는 목표가 믿음의 동기가 되고, 다시 오실 예수님보다 ‘지금의 나’가 더 커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기 영광을 위한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후 4:18)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영원하지도 않은 것들에 영혼을 걸 이유가 없습니다.

왜 성도의 소망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다.”(롬 8:22) 창조 세계 전체가 탄식합니다. 왜냐하면 죄와 죽음이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환경을 개선해도, 아무리 교육을 높여도,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탄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죄와 죽음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세상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터진 웅덩이를 판다.”(렘 2:13) 사람들은 물을 담을 수 없는 웅덩이를 만드는 데 인생을 소비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한 사람은 압니다. 이 땅에는 참된 소망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의 언약만이 소망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못 이룬 게 많아서 아쉬운 죽음이다.” 순수하지만 복음의 핵심을 모르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완성입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십자가는 비극이 아니라 언약의 절정입니다.

신명기는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우리가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되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지심으로 우리를 죄와 율법과 죽음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주저함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성령 받은 성도는 어떤 사람일까요? 성령 받은 사람은 단지 예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사람, 영원한 것을 소망하는 사람, 탄식 속에서도 주님의 약속을 붙드는 사람, 세상의 웅덩이가 아니라 생수의 근원을 찾는 사람, 이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사람, 무엇보다도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를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내용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이 고백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