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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인간과 죄 (2)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24.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

우리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질문입니다. 철학자도, 예술가도, 학자도, 일반 사람들도 모두 결국 이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수천 년이 지나도록 인간은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연구해도,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인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파스칼은 인간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인간이란 얼마나 해괴하며 얼마나 신기한가. 괴물 같기도 하고, 모순투성이이기도 하며, 영광스럽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인간은 달에 사람을 보내는 기술을 만들었지만, 정작 자기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해 전쟁을 벌이고 서로를 미워합니다. 지식을 쌓아 우주를 관찰하지만, 정작 자기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인간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인간에 대해 ‘
너무 많은 말’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실은 ‘가장 중요한 말’을 놓치고 살아갑니다. 그 중요한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이다.” 성경은 인간 이해의 출발점을 언제나 창세기로 데려갑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 1:27) 만물은 “각기 종류대로”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만큼은 특별히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시작이며 존재의 근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신이 하나님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철학은 인간을 정신으로만 설명하거나 반대로 단지 물질일 뿐이라고 단순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심리학은 인간을 환경의 산물로 보기도 하고, 사회학은 인간을 사회 구조 속 한 조각으로만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설명은 인간의 전부를 담아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만든 분을 배제한 채 인간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뿌리를 보지 않고 나무를 설명할 수 없듯이, 창조주를 떠난 인간론은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가장 놀라운 정체성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 형상은 두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넓은 의미의 형상은 인간됨 전체를 말합니다. 생각하는 능력, 사랑하는 마음, 창조하는 능력, 관계를 맺는 구조, 도덕적 판단, 예배하는 능력, 자연을 다스리는 사명 즉,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도록 주어진 모든 것이 넓은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우리의 사고, 감정, 몸, 영혼, 사회적 삶까지 모두 하나님을 드러내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둘째로 좁은 의미의 형상은 하나님을 닮은 도덕적·영적 성품을 말합니다. 거룩, 의, 정결, 참된 지식, 아담과 하와는 처음부터 죄가 없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을 비추고,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의 현실에서 무너졌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3절에서 타락한 인간의 비참한 현실을 가감 없이 설명합니다. “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죽었다는 말은 움직이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다는 뜻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듯이, 죄로 죽은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지식이 없습니다.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죄는 인간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따라가도록 만듭니다. 세상의 가치, 세상의 욕망, 세상의 인정,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의 흐름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하여…”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타락은 인간의 형상 자체를 없애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 형상 전체를 왜곡시키고 훼손시켰습니다. 생각은 하나님을 거스르고, 감정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의지는 죄에 붙잡히고, 욕망은 끝없이 흐트러지고, 삶 전체가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죄는 인간을 완전히 꺾어 놓았습니다.

인간을 아는 것이 복음을 아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인간과 죄를 깊이 살펴봅니까? 왜 굳이 이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붙들고 묵상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알 때,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서 건져내셨는지가 보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
살리셨도다”라고 선포하신 그 은혜가 얼마나 강력하고도 놀라운 것인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복음은 상처 없는 사람에게 빛나지 않습니다. 부서지고 망가진 영혼일수록 예수의 은혜가 더 찬란하게 스며듭니다.

이제 우리는 중요한 질문들 앞에 서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 어떻게 타락했는가? 죄는 인간의 어떤 부분을 손상시켰는가?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가? 죽은 인간에게 생명은 어떻게 임하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죄인을 다시 형상 회복의 자리로 이끄시는가?" 이 질문들을 따라갈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복음이 얼마나 완전한지, 예수가 우리에게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더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인간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 없이 인간은 자기 마음조차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누구인지 알려면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고, 그분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며, 그분만이 우리를 회복시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는 죽었던 자였으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이 은혜 앞에 우리의 존재는 다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