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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성경과 나 -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24.

전 세계에는 성경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책인지, 성경이 왜 모든 인간을 죄인이라 부르는지, 그리고 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는지 그 의미를 깊이 알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질문의 답을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성경 속에 담긴 창세전 하나님의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 진리를 알게 된 우리는 어떻게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말하려 합니다.

당신은 왜 태어났습니까? 우리는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눈을 떠 보니 이미 ‘
’라는 존재가 세상 한가운데 놓여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누가 나를 태어나게 했습니까? 우리는 부모라고 대답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는 누가 태어나게 했습니까? 그 부모의 부모는 누구입니까? 이렇게 계속 올라가면 결국 아담과 하와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늘과 땅, 태양과 달, 보이는 모든 만물도 그분이 지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성경은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드러내야 하는 영광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창세기 1장 이전, 세상이 생기기도 전부터 이미 존재했습니다. 성경은 그 시간을 창세전, 곧 묵시의 세계라고 부릅니다. 그 묵시가 시간 속으로 흘러 들어오면서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우연한 사건들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묵시가 풀어져 나온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묵시를 기록한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단지 옛 문헌도, 종교적 교훈집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의 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비논리적이다’, ‘허구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인간의 이성이 감당할 수 없는 곳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어떻게 증거해야 합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 1:23) 성경은 스스로를 증거하는 책이며, 하나님이 택한 자들에게만 열리는 책입니다. 같은 문자를 읽어도 어떤 사람에게는 죽은 문자, 어떤 사람에게는 살아 있는 말씀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말씀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묵시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묵시를 알 수 있도록 보이는 세계, 즉 이 역사를 지으셨습니다. 태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달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냅니다. 시편 136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
하늘과 땅과 해와 달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 해와 달만 보아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버리고 해와 달을 섬깁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됩니다.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의 마음을 흔들었고, 그날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고자 했습니다. 그날 이후 인간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은 나를 위해 있어야 한다.” “모두 내 영광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인간은 자기 영광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기준을 ‘
’로 둡니다. 날씨가 좋은가 나쁜가? 내 기분 기준입니다. 사람이 좋은가 나쁜가? 나에게 어떻게 하는가 기준입니다. 상황이 옳은가 틀린가? 내게 이익인가 손해인가가 기준입니다. 심지어 부부 사이조차 “나에게 어떻게 해주느냐”, 그 기준으로 선과 악을 구별합니다. 그래서 한자의 ‘나(我)’라는 글자는 손에 창(戈)을 든 모습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건드리면 찌르겠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며 역사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직후 태어난 가인과 아벨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때문입니다. 가인은 이렇게 반응했어야 합니다. “
나는 죄인이구나. 그래서 하나님은 내 제물은 받지 않으시는구나.” 그러나 가인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내 것은 안 받고 동생 건 받는가? 하나님은 불의하시다!” 이 분노가 결국 아벨을 죽이는 살인으로 이어졌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도시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고,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라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를 상하게 한 자는 일흔일곱 배로 갚겠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나는 상처만 입었는데, 상대는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인간의 자아는 교육으로, 정치로, 문화로 고쳐지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스스로 넘을 수 없는 담이 생겼습니다. 그 담을 허무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직접 화목제물을 보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의 왕이다.” “나는 너희의 주인이다." “나는 너희를 창조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 중앙에는 이미 가짜 왕, 즉 ‘’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눅 20장) 포도원 주인은 종들을 보냈지만 농부들은 때리고 쫓아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인의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저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은 우리의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을 죽였습니다. 이 비유는 이스라엘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모든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유대인과 로마가 연합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원인 제공자는 바로 선악과를 먹고 스스로 주체가 된 ‘’입니다.

예수가 필요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 시대는 풍요롭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조금만 채워지면 더 채우고, 조금만 오르면 더 오르려고 합니다. 겉으로는 예쁘게 살아가는 것 같아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가인의 분노, 라멕의 복수, 나 중심의 신성이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롬 3:23) 그리고 성경은 또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 얻을 이름이 없다.”(행 4:12) 우리는 이 사실 앞에 서야 합니다. 내가 왜 존재하는지, 누가 나를 창조했는지, 왜 예수밖에 길이 없는지, 그리고 그 예수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대답합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나니.”(로마서 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