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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민수기 - 오분의 일, 은혜의 무게를 재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거역함으로 죄를 지으면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민수기 5:6~7)

성경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자 애쓴다는 고백은 언제 들어도 반갑습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까지, 모든 말씀이 결국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믿음은 설교자에게도, 말씀을 듣는 성도에게도 매우 중요한 전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마주한 본문, 민수기 5장 5~10절은 솔직히 말해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또렷이 보이는 말씀은 아닙니다. ‘
’, ‘자복’, ‘배상’, 그리고 낯설게 느껴지는 ‘오분의 일’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뿐입니다.

이 규례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이 질문은 단순히 지적인 호기심이 아닙니다. 성경을 도덕 교과서처럼 읽을 것인가, 아니면 복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계시로 읽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만일 이 본문이 “
남에게 피해를 주면 20퍼센트 더 갚아라”라는 윤리 규정에 그친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옛 율법으로 밀어내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읽히도록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5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거역함으로 죄를 지으면.”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말하는 죄의 내용이 주로 이웃에게 손해를 끼친 일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단순히 인간 사이의 문제로 말하지 않습니다. 이웃에게 범한 죄가 곧 “여호와께 거역한 죄”라고 선언합니다.

이 관점은 다윗의 고백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간음과 살인이라는 끔찍한 죄를 저지른 후,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나이다.” 이 고백을 오해하면 위험하다. 마치 사람에게 저지른 죄는 사소하고, 하나님께만 잘못하면 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말은 그 반대입니다. 이웃에게 지은 죄의 깊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죄인지를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성경은 죄를 언제나 관계의 파괴로 말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깨진 것은,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민수기 5장은 이웃에게 손해를 끼친 죄를 하나님께 대한 배신으로 규정합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깨달은 자에게 단순한 사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주라고 하십니다. 손해를 입힌 금액에 20퍼센트를 더 얹어 갚으라는 명령입니다. 왜 굳이 오분의 일을 더하라고 하셨을까요? 성경에서 오분의 일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는 백성에게 추수의 오분의 일만 세금으로 바치게 했습니다. 기근 속에서 모든 것을 잃을 뻔한 백성은 이 제도를 “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굶어 죽지 않게 살려준 조치였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에서도 성물에 손해를 입혔을 때, 원래의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해 배상하게 합니다. 이 ‘
더함’은 단순한 벌금이 아닙니다. 죄가 남긴 상처가 단순히 원상회복으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표지입니다. 죄는 언제나 관계에 균열을 남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배상 속에 회개의 무게를 담게 하십니다.

배상을 받을 사람이 없을 때에도 더 놀라운 것은, 피해자가 이미 죽었거나 배상받을 친족이 없을 경우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 배상금을 제사장에게 돌리라고 하십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웃에게 지은 죄가 결국 하나님께 지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배상과 함께 반드시 속죄의 숫양을 드리게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봅니다. 오분의 일을 더해 갚는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피 흘림이 필요합니다. 희생 제사가 동반됩니다. 이 구조는 훗날 단번에 드려질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향해 우리를 이끕니다.

영화 <밀양>은 이 지점에서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아들을 죽인 범인이 “
나는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말할 때, 피해자의 마음은 무너집니다. 만일 그 범인이 진정으로 회개한 자였다면, 그는 무엇을 말했어야 했을까요?

성경적 회개는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회개는 반드시 삶의 방향 전환과 책임의 감당으로 드러납니다. 다윗은 용서받았지만, 그 죄의 결과를 평생 짊어지고 삽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속여 빼앗은 것을 네 배로 갚겠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이 임했을 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민수기 5장은 결국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데려갑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손해를 끼친 자들이며, 그 죄는 곧 하나님께 지은 죄입니다.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은 오분의 일을 더한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죄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도둑이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이 세상 한가운데서,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 은혜를 입은 자는 더 이상 계산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 애쓰는 삶에서, 기꺼이 내어주는 삶으로 옮겨집니다.

사도 바울은 참된 생명을 취한 자는 나누기를 좋아하고, 선한 일에 부유해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율법이 아니라, 생명이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열매입니다.

오분의 일은 작은 숫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죄의 무게와 은혜의 깊이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분은 오분의 일을 더하신 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전부 내어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