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아가 4:7~11)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이 말씀을 처음 들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정말 그럴까? 과연 나는 어여쁜가? 정말 흠이 없는가? 아가서 속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나는 검으나 아름답다”(아 1:5)라고 말합니다. 태양 아래서 일하며 거무스름해진 피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삶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녀는 특별할 것 없는, 아니 어쩌면 볼품없는 여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왕은 그런 여인을 향해 단호하게 말합니다.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인의 상태가 아니라 왕의 사랑입니다. 여인이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닙니다. 얼굴빛이 바뀐 것도, 조건이 달라진 것도 아닙니다. 변한 것은 오직 하나, 사랑의 시선입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새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갔습니다. 비싼 운동화도 아니고, 유행하는 브랜드도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은 그 신발을 보며 웃었습니다. “그게 뭐야?” “촌스럽다.” 그날 집에 돌아온 아이는 울면서 말합니다. “아빠, 나 이 신발 싫어.” 그때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눈에는 네가 뭘 신어도 제일 멋지다.” 그 말은 신발을 바꾸는 말이 아닙니다. 아이의 가치를 다시 확인해 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가 아이의 하루를, 마음을 바꿉니다.
사랑은 대상을 꾸며서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하기로 작정한 자를 그대로 끌어안고 선언합니다. “너는 흠이 없다.” 아가서의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십자가에서 확증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좀 더 기도해야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좋아져야 주님 앞에 설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 모습으로는 아직 부족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가서의 여인은 그런 질문을 할 여지가 없습니다. 왕은 먼저 말합니다. “너는 어여쁘다.” “아무 흠이 없다.” 사랑의 시작은 신부의 준비가 아니라 신랑의 결정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 사랑의 결과이지, 조건 충족의 보상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5장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셨기에, 교회가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순서가 분명합니다. 거룩해져서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사랑받아서 거룩해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자기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나는 아직 부족해.” “나는 자격이 없어.” “나는 더 나아져야 해.” 이 말들은 겸손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사랑의 선언을 믿지 못하는 불신일 수 있습니다. 신랑이 “흠이 없다”고 말했는데, 신부가 계속 “아닙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신랑의 사랑을 부정하는 태도입니다. 여인은 사랑받은 후에도 여전히 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 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여인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마술이 아니라, 여인을 새로운 관계 안에 두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왕은 여인을 “내 신부”라고 부를 뿐 아니라 “내 누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매우 독특합니다. 누이는 가족입니다. 가족은 다투어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멀어져도 관계 자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말은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관계임을 보여 줍니다. 신부의 실수나 연약함 때문에 파기될 수 있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완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조롱도, 자기 비난도, 실패의 경험도 왕과 신부의 관계를 끊지 못합니다.
왕은 말합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이 말은 신부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부를 통해 사랑의 위대함이 드러난다는 고백입니다. 마치 값없는 돌멩이를 보석함에 올려두었을 때, 그 돌이 귀해 보이는 이유는 돌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담고 있는 자리 때문인 것과 같습니다.
성도는 자기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증거물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내가 얼마나 잘했는가”를 말하는 삶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완전한가”를 증언하는 삶입니다.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자람이 없습니다. 이것이 신랑의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우리의 느낌이나 상태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로 완성된 사랑에 근거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도 신랑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이 말씀을 자신의 현실로 믿고, 그 사랑 안에서 안식하며, 그 사랑을 자랑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구약 말씀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민수기 - 의심의 소제, 하나님 앞에 서는 용기 (0) | 2026.01.07 |
|---|---|
| 전도서 - 날 때와 죽을 때 (0) | 2026.01.06 |
| 구약의 복음 - 금강석 끝 철필로 새겨진 마음 (1) | 2026.01.03 |
| 민수기 - 오분의 일, 은혜의 무게를 재다 (1) | 2026.01.02 |
| 아가서 -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0) | 2025.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