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린도후서 13:13)
"삼위일체" 이 단어는 많은 성도들에게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개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왜 교회는 그 하나님이 ‘삼위’ 곧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라고 말할까요? 어떤 이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또 성령을 보내신다고 하시는데, 이게 어떻게 한 하나님인가요?”라고 묻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 우리의 이성은 본래 유한하고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시지만, 그분의 존재 자체를 인간의 논리로 완벽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삼위일체는 ‘설명되는 개념’이 아니라 ‘믿음으로 고백되는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세 위격으로 존재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서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통하심을 언급하며 기도합니다. 이는 교회를 향한 삼위 하나님의 각기 다른 사역을 동시에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그 구원의 배경에는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으며, 지금도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와 하나님을 연결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이런 삼위 하나님의 역동적 관계를 여러 곳에서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7장 55~56절에서는 순교 직전의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과 그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봅니다. 한 화면 안에 세 위격이 모두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셨고,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하셨으며, 실제로 사도행전 13장에서는 성령께서 직접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세우시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 모든 성경 구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한 분이시되, 동시에 세 분이시다”는 고백을 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고백이 단순한 논리적 설명이나 철학적 구조가 아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는 사실입니다.
삼신론이 아닌 삼위일체입니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 분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결코 세 분의 신, 즉 ‘삼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단입니다. 삼위일체란, 본질은 하나요, 위격은 셋이라는 신비로운 고백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각기 구분되는 위격(Person)이지만, 본질(Essence)은 하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물의 상태 변화처럼 설명하려는 시도(예: 물, 얼음, 수증기)나, 한 사람이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아들이 될 수 있다는 식의 비유로는 절대 정확하게 담아낼 수 없습니다. 이런 비유들은 종종 이단인 양태론이나 삼신론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삼위일체는 사람이 만들어낸 그림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하신 실체입니다. 그렇기에 이 교리를 다룰 때 우리는 언제나 겸손함과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삼위일체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어서 믿는 분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믿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완전히 꿰뚫어볼 수 있다면, 그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 아닙니다.
마틴 루터도 삼위일체에 대해 “모른다”고 했고, 서울대의 손봉호 교수 역시 이 교리에 대해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이해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를 우리에게 전하실 때, 늘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삼위일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분이 우리를 위해 성자 하나님을 보내셨고, 지금도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여전히 성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사는 삶, 하나님은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삼위 하나님은 오늘도 나와 함께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오늘도 나의 죄를 덮고, 성부 하나님의 사랑은 내 삶의 모든 상황을 지탱하며,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은 내 영혼을 살아 있게 합니다.
우리가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충만한 사역이 우리의 삶 전체에 머물러 있음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내 삶 가운데 충만히 임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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