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애굽기20:8~11)
우리는 일주일 중 왜 하필이면 일요일에 모여 예배할까요? 단순히 세상이 정한 휴일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일까요? 구약의 안식일은 토요일인데, 왜 신약의 성도들은 주일에 모이는 것이 정상이 되었을까요? 그리고 왜 어떤 이들은 토요일에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이단이라 불리기도 할까요?
이 질문은 단순히 '요일'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본질과 복음의 깊이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안식일에서 주일로의 전환이 갖는 신학적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며, 주일 예배의 참된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보려 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표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십계명 중 가장 많은 설명이 붙은 계명은 바로 네 번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입니다(출20:8~11). 안식일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표징이었습니다(출31:13). 하나님은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 안식일은 창조의 질서를 기념하는 날이었고,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의 고백이었습니다. ‘하루를 쉬어도 하나님이 채우신다’는 믿음 없이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날이었기에, 안식일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신앙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안식일을 지키는 데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전쟁 중이라도 도망가지 않고 죽음을 선택했던 그들의 태도는, 잘못된 율법주의의 그림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만큼 이 계명이 갖는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민수기 15장에는 안식일에 나무를 주운 자가 온 회중에 의해 돌에 맞아 죽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는 우리가 보기엔 충격적인 장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이토록 강력한 방식으로 안식일을 어기는 일이 가져올 무서운 결과를 미리 경고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을 어긴다는 것은 단지 휴식을 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짓밟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별된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표적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안식일을 무시하고 더럽히는 일은, 그분의 통치와 은혜를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이 일상의 7일 중 안식일을 구별하라 명했다면, 레위기 25장은 7년마다 찾아오는 안식년과 그 일곱 번을 모아 맞이하는 희년에 대해 말합니다. 50년째 해인 희년에는 땅이 쉬고, 빚이 탕감되고, 팔린 토지는 되돌려지며, 종은 자유를 얻습니다. 모든 것이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이 놀라운 회복의 법은, 인간의 죄로 인해 깨어진 창조 질서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미리 보여주는 제도였습니다.
희년은 실현된 구원의 예표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너희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내가 갚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예언을 읽으시며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바로 희년의 실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요, 포로 된 자의 자유이며, 눌린 자의 해방입니다. 그것은 바로 ‘은혜의 해’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는 그 해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단지 하루의 안식, 일곱 해의 안식, 희년의 안식을 넘어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 안식은 더 이상 ‘요일’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삶 자체가 안식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곧 주간의 첫날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습관의 전환이 아니라 신학적 선언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 날은 새 창조의 첫날이었고, 새로운 안식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주일은 부활의 날이며, 은혜의 날이며, 희년이 선포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창조를 시작하신 날이며, 죄의 빚이 탕감되고, 억눌린 자가 자유를 얻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에 모여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일만이 '옳은 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날에 하나님이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우리가 희년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선포하며, 복음의 은혜로 살아가겠다는 믿음의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우리에게 쉼을 명하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주일은, 단지 쉼이 아니라 새 생명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날에 매이지 않으며, 그분의 부활 안에서 참된 안식에 들어간 자들입니다.
우리는 주일마다 다시 한번 주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빚지고 종 되었던 우리에게, 아무 대가 없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기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마다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여, 나는 갚을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내 희년이 되어주셨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신 예수여, 오늘도 주의 날에 내가 자유를 누립니다.”
주일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은혜로운 날입니다. 그 날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희년이 선포된 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와 자유를 기념하는 새 창조의 첫날인 것입니다.
주일은 창조 안식일의 그림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완성된 참된 안식의 실체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제도를 따르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복음을 따릅니다.
주일은 공동체가 모여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고, 그 안에서 참된 안식과 자유를 누리는 날입니다. 이 날의 예배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율법 아래 안식일에 목숨을 건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복음 아래 주일을 목숨보다 귀히 여기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율법보다 크고, 주일은 그 은혜를 누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주의 날로 부르시고
주 앞에 나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날은 주께서 지으신 날이요,
우리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신 은혜의 날입니다.
주님,
우리가 일상의 분주함을 멈추고
세상의 노동과 염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의 부활로 시작된 이 주일이
우리의 영혼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새 창조의 기념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당신은 우리에게 희년이 되셨고,
죄의 빚을 탕감하시며,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십자가로 구속받은 자요,
당신의 부활로 다시 살아난 새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
우리가 세상의 방식이 아닌 은혜의 방식으로 살게 하시고,
율법의 굴레가 아닌 복음의 자유 안에 거하게 하소서.
우리의 예배가 형식이 아닌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시며,
우리의 삶이 주의 은혜를 기념하는 산 제사가 되게 하소서.
성령님,
오늘 이 거룩한 날,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고
예배 가운데 임재하사
참된 안식과 회복을 누리게 하소서.
주께서 선포하신 은혜의 해가
오늘 우리 가운데 실제가 되게 하시고,
우리가 주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백성 되게 하소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믿음으로 응답하는 일임을 알게 하시고,
이 날의 복을 누리며
주님과 동행하는 한 주를 시작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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