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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버려지는 것이 없게 하라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6. 17.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한복음 6:12)

이사를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압니다. 짐을 싸다 보면 반드시 마주치는 순간이 있습니다. 장롱 깊숙이 묻혀 있던 물건을 꺼내 들고는 "
이게 아직도 있었나?"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 순간, 한때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 여겼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버려야 할 것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검은 봉지 몇 개를 가득 채웁니다.

사람이 만든 세계는 본래 버림으로 유지됩니다. 냉장고 안에서 잊혀진 반찬들, 유행이 지난 옷가지들, 읽지 않는 책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에는 버려지는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가을에 떨어진 낙엽은 썩어 이듬해 봄의 거름이 되고, 하늘에서 내린 눈은 녹아 맑은 물로 스며듭니다. 사람이 만든 플라스틱은 썩지 않아 바다를 오염시키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은 썩음으로써 새 생명을 잉태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세상을 설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로 그 원칙을 따라 일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기록된 오병이어의 기적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남자만 오천 명,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족히 만 명은 넘었을 군중이 빈 들판에 모였습니다. 저녁이 되도록 배는 고파 오는데, 음식이라고는 한 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받아 감사 기도를 드리셨고, 나누어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끝난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한복음 6:12) 솔직히 처음 이 말씀을 읽으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방금 수천 명을 먹이신 분이, 원하시면 얼마든지 다시 만들어 내실 수 있는 분이, 제자들에게 음식 조각을 주워 담으라고 하신다니, 이것은 기적을 행하신 분이 하실 말씀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말씀 안에 예수님의 위대함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짧은 한 문장 속에 세 가지 깊은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배부름으로 인해 영적 긴장감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시 그날의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사람들은 기쁨과 흥분으로 가득 찼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앉아 있던 이들이 이제는 배부름의 만족감에 젖어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남은 떡 조각들이 발밑에서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부르니, 더 이상 빵 조각 하나가 귀하지 않았습니다. 아까는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 이제는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 배부름의 영적 위험을 여러 곳에서 경고합니다. 신명기 6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좋은 것을 먹고 배부른 후에 하나님을 잊을 것을 경계했고, 호세아서는 이스라엘이 결국 심판을 받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배부름으로 인한 교만, 곧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한국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던 시절,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 풍요로워지면서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생겨났습니다. 가난할 때는 간절히 하나님을 붙들었는데, 먹고 살 만해지니 그 간절함이 사라진 것입니다. 배부름이 믿음의 자리를 밀어낸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적을 경험한 군중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뜨거운 열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열망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정말 원한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해결해 주신 배부름이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때로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열망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향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선물을 받기 원하되, 정작 그 손을 잡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기적 앞에서도 현실 감각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적으로 만드신 떡은 어떤 떡이었을까요? 허공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환상 속의 떡이 아니었습니다. 손으로 집어 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먹으면 소화가 되는, 오래 두면 썩는 떡이었습니다. 기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기적의 떡은 자연법칙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영국의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는 그의 책 《기적》에서 이 점을 정확하게 짚어냈습니다. 기적이란 자연법칙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힘이 자연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그 순간은 초자연적이지만, 기적의 결과는 곧 자연법칙 안으로 흡수됩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처녀의 몸에 기적으로 생명을 잉태하게 하셨지만, 예수님은 열 달의 임신이라는 자연적 과정을 거쳐 태어나셨습니다. 기적의 시작은 초자연적이었지만, 그 이후의 과정은 완전히 자연의 법칙을 따랐습니다.

제자들 중에는 혹시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
예수님이 기적으로 만드신 떡인데, 버려도 다시 만들어 주시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 생각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거두어라.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기적은 우리에게 현실을 무시할 권리를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적을 경험한 사람은 더욱 현실에 충실해야 합니다.

믿음이 좋다는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시는데, 내가 왜 노력해야 합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셨을 때, 제자들은 광주리를 들고 들판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기적은 게으름의 면허증이 아니라, 더 깊은 책임감으로의 초대입니다.

셋째, 남은 조각 속에 담긴 가능성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남은 조각을 버리기 시작했을 때, 제자들이 그것을 모두 거두어 보니 열두 광주리가 되었습니다. 배고플 때라면 단 한 광주리도 얼마나 소중했겠습니까? 그런데 배가 부르고 나니 열두 광주리나 되는 양이 발밑에 버려지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한 구호단체의 직원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의 한 학교 급식에서 하루에 버려지는 음식의 양을 모은다면, 아프리카의 한 마을 아이들 전체가 한 달을 먹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
남은 것"이라 여겨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살과 뼈를 이어 주는 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
남은 조각"은 단지 먹다 남은 빵 조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이 정도는 버려도 되지"라고 생각하며 흘려보내는 모든 것들, 시간, 재능, 관계, 물질, 그 안에 하나님이 심어 두신 엄청난 가능성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짧은 위로의 말 한 마디,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작은 헌신 하나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신 하나님이시라면, 열두 광주리로는 얼마나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버려진 남은 조각들이 다시 주님의 손에 들려질 때, 그것은 또 다른 기적의 씨앗이 됩니다.

이사를 하면서 짐을 정리하다 보면, 어떤 것들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원칙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 앞에서, 우리는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거두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배부름 속에서도 영적 긴장감을 잃지 않고, 기적 앞에서도 현실을 직시하며, 남은 조각 속에 담긴 가능성을 끝까지 붙드는 것, 그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에게 들려옵니다. "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부는 분뇨와 같아서 축적되면 악취를 내고, 뿌려지면 땅을 비옥하게 한다. - 레프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