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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새 포도주는 어디에 있는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6. 17.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마가복음 2:22)

2019년, 영국 런던의 한 오래된 성당이 문을 닫았습니다.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 건물은 이제 고급 아파트로 개조되었습니다. 뾰족한 첨탑은 그대로인데, 내부는 복층 구조의 고급 인테리어로 채워졌습니다. 인스타그램에는 그 공간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넘쳐났습니다. 사람들은 "
멋있다"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었을 텐데." 그 성당은 아름다운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아니, 박물관보다 못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박물관에는 적어도 과거의 이야기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교회학자 레너드 스윗은 교회를 네 종류로 나눴습니다. 선교형, 사역형, 유지형, 박물관형입니다. 그가 말하는 박물관 교회란 이미 역사책 속으로 들어간 교회입니다. 처음엔 누구나 선교형 교회로 시작합니다. 불타는 사명감으로, 가진 것 없이 뛰어듭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
우리 교회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가 됩니다. 그리고 결국엔 유물이 됩니다. 스윗은 이것이 유럽과 북미 교회들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슬프게도, 그 역사는 지금 한국 교회에서도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2007년, 스티브 잡스가 무대 위에서 아이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당시 노키아는 세계 휴대폰 시장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노키아의 경영진들은 아이폰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
키보드도 없는 전화기가 될 리 없다." 그로부터 5년 후, 노키아는 무너졌습니다. 문제는 기술력이 아니었습니다. 노키아는 훌륭한 엔지니어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는 낡은 사고방식, 즉 낡은 가죽 부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아주 익숙한 일상의 언어로 말씀하셨습니다.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당시 사람들은 포도즙을 염소 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넣어 발효시켰습니다. 발효가 시작되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가스가 팽창하면서 가죽 부대가 늘어납니다. 새 가죽 부대는 유연해서 그 팽창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낡은 부대는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하고 결국 터집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한 가지 도전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나는 새 포도주다."

여기서 우리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이 비유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시 "
그렇다면 가죽 부대를 어떻게 바꿀까?"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교회 구조를 바꾸자, 예배 형식을 바꾸자, 조직을 혁신하자." 물론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강조점은 '부대'가 아니라 '새 포도주'에 있었습니다. 새 포도주, 즉 예수님 자신의 임재가 없다면, 아무리 멋진 새 부대를 준비해도 그 안은 텅 비어 있을 뿐입니다.

요즘 교회들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세련된 영상을 만들고, SNS를 운영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안에 새 포도주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포장은 바뀌었는데 내용물이 없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공허한 흉내일 뿐입니다. 반대로, 새 포도주가 살아 있다면 그 팽창하는 힘이 낡은 부대를 자연스럽게 밀어냅니다. 성령의 임재가 회복되면, 우리가 붙들고 있던 낡은 관습과 제도는 저절로 밀려납니다. 강물이 흐르면 장애물은 결국 쓸려간다. 역사를 보면 이 패턴이 반복됩니다.

많은 교회 역사가들은 교회가 운동력을 잃어버린 결정적인 순간으로 콘스탄틴 황제 시대를 꼽습니다. 313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으면서 더 이상 순교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자유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타협의 시작이었습니다. 교회는 점차 제도 속에 안주했고, 운동력을 잃었으며, 중세의 암흑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
예수는 좋은데, 교회는 싫다." 이 말은 단순한 반항이 아닙니다. 이 말 안에는 날카로운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새 포도주의 향기는 맡고 싶은데, 그 포도주를 담고 있는 낡고 딱딱한 부대에는 질려버린 것입니다. 제도, 위계, 관성, 체면, 권력, 이것들이 예수보다 더 중요해진 교회를 보며 그들은 등을 돌립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한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부대와 포도주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제도와 하나님 나라는 같지 않습니다. 낡은 부대를 버린다고 해서 새 포도주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새 포도주가 먼저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
지금 우리 안에 새 포도주가 있는가?" 제도를 탓하기 전에, 형식을 논하기 전에, 세대 간의 갈등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 포도주,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임재, 성령의 역동적인 현존이 우리 안에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새 포도주가 있다면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새 부대를 준비하면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담지 못하는 제도는 과감히 내려놓고, 그 본질을 더 잘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그릇을 찾으면 됩니다. 직분도, 조직도, 예배의 형식도, 모두 목적에 맞게 갱신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타협이 아니라 충성입니다.

런던의 그 성당이 아파트가 된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더 슬픈 일은, 아직 문이 열려 있는 성당 안에 새 포도주가 없는 것입니다. 건물은 있는데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지금도 흘러넘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 부대를 들고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옷을 염료에 담그듯 당신의 본성을 복음에 완전히 잠기게 하라. - 찰스 스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