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로마서 1:2)
비가 내리지 않았던 땅 위에, 첫 생명이 숨을 쉬었습니다. 그 숨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숨결, 곧 창세전부터 준비된 은혜의 호흡이었습니다. 창세기 2장의 그 한 장면은, 단순한 창조의 기록이 아니라 복음의 첫 약속입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말은 은혜가 임하지 않았음을 뜻하고, 흙이 생기를 받아 생령이 되었다는 말은 죽음의 흙 위에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내렸음을 의미합니다.
이 은혜의 비는 창세전부터 예비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 아들과 언약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보내리라. 네가 그들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리라. 그리하여 네 생명으로 그들을 다시 살리리라.” 복음은 그때부터 이미 흘러오기 시작했습니다. 역사라는 긴 강줄기를 따라, 예언자들의 입술을 통해 흘러왔고, 마침내 한 아기의 울음소리로 세상에 도착했습니다. 그 아기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로마서 1장은 “복음은 그의 아들에 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선언은 복음의 중심이 인간의 결단이나 의지가 아니라 아들의 이야기임을 밝히는 근본적인 고백입니다. 그분은 창세전부터 예비되셨습니다(벧전 1:20).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조차도 자신의 구속 언약 안에 두셨습니다. 인간의 실패가 복음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타락은 복음이 흘러들어올 골짜기를 만들었습니다.
죽은 자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죽어 있는 것뿐입니다. 복음은 바로 그 무력한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비가 내리지 않은 황무지 같은 땅 위로 첫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그때 생명이 시작됩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이름을 “엘로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꾸십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명칭의 변화가 아닙니다. 그분이 이제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심을 의미합니다. “아직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말은 성령의 은혜가 임하지 않은 인간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고, 그 비가 흙 위에 스며들어 생기가 되어 생명을 낳습니다.
그 흙은 바로 나입니다. 죽은 흙, 생기 없는 존재,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죽은 흙에 예수의 피가 부어질 때, 땅이 살아난다.” 예수의 피는 은혜의 비요, 그분의 부활은 새 생명이 터져 나오는 첫 햇살입니다. 그분이 죽음 속으로 들어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창세전 언약은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으려 하면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도덕적 모범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을 입는 사건입니다. 본받음이 아니라 입힘, 결단이 아니라 전가, 노력의 종교가 아니라 은혜의 종교입니다. 복음이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는 능동적인 사건입니다. 복음이 우리 안으로 들어올 때, 그 말씀 자체가 생명이 되어 죽은 심령을 깨우고, 메마른 영혼 위에 비처럼 내립니다.
복음의 비를 맞은 자는 스스로를 흙, 똥, 쓰레기로 깨닫습니다. 그렇게 낮아진 자리에서 하나님은 그를 들어 올리십니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들어 귀족들과 함께 하신다.”(삼상 2:8) 하나님은 결코 스스로 높아진 자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십니다. 비는 항상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복음의 은혜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언제나 낮고 깨어진 곳에서 피어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창세전부터 약속되셨고, 역사 속에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으며, 지금도 성령의 비로 우리 안에 생명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내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비가 내리지 않았던 땅 위에, 그분의 비가 내렸습니다. 그 비는 흙을 적시고, 생명을 일으키며, 죽은 자를 하나님과 연합하게 합니다.
“비가 내리지 않았던 땅 위에, 첫 생명이 숨을 쉬었다. 그 숨은 하나님의 아들의 숨결이었다.” 그분의 숨결이 오늘도 우리 영혼 위에 내립니다. 그 비를 맞을 때, 우리는 다시 살아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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