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사사기 1:1~2)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뜻밖의 상황 앞에 서게 됩니다.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지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공동체든 지도자가 공백 상태에 놓이면 불안해집니다. “이제 누가 이끌 것인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런 불안을 그대로 두십니다. 아니, 오히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듯 보입니다.
왜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뒤를 이을 지도자를 남겨두지 않으셨을까요? 이 질문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를 세우신 것은, 더 뛰어난 인물을 통해 이스라엘을 새롭게 운영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부족해서 밀려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실패한 지도자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는 누구였습니까? 그는 모세의 일을 ‘대체’한 사람이 아니라, 모세의 사역을 ‘이어간’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곧 “여호와만 사랑하라”, “그의 말씀을 지키라”는 메시지를 가나안 땅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를 읽다 보면, 여호수아가 새로운 메시지를 선포했다기보다, 모세의 유언을 반복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 흐름 속에서 보면, 여호수아 이후에 또 다른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았던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이스라엘을 이끌던 진짜 지도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삶을 떠올려 봅시다. 그는 반석을 두 번 쳤다는 이유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 가혹해 보입니다. 평생을 이스라엘을 위해 헌신한 지도자에게, 마지막 문턱에서 이런 결과를 주십니다. 그러나 모세의 실패는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실패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진리를 보여주셨습니다. “너희가 이 땅에 들어가는 것은 너희가 잘해서가 아니다. 너희의 순종 때문도, 지도자의 완전함 때문도 아니다. 오직 나의 긍휼과 은혜 때문이다.” 모세 자신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그는 불평하지 않았고 끝내 순종했습니다. 실패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되지 않는 언약, 이것이 모세가 광야에서 발견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마지막까지 “여호와만 섬기라”고 말했고, 여호수아 역시 같은 말을 남기고 생을 마칩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신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사기 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이 질문은 어쩌면 이상하게 들립니다. “누가 먼저 싸울지” 정도는 회의를 해서 결정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문제까지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결정하라”,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라”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기 때문입니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삶이 성숙한 삶이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아이는 자기 인생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보호받을 것을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이스라엘이 “누가 먼저 올라갈까요?”라고 하나님께 묻는 모습은 바로 그런 어린아이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삶을 사는 모습입니다.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나님은 유다를 지목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여기서 ‘붙였다’는 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원하는 걸 얻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이 단순히 땅을 선물처럼 주셨다면, 굳이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싸우라고 하시면서도, 이미 붙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분명히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싸움은 하지만,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 노력은 하지만, 책임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 이것이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세상은 “네가 해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내가 붙였다”고 말합니다.
전쟁 중에 등장하는 아도니 베섹의 이야기는 충격적입니다. 그의 수족 엄지가 잘립니다. 그런데 그는 그 순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이 장면은 단순한 복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한 가지를 가르치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 수치를 인정할 때,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게 됩니다. 자신의 강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 기대어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말은, 인생이 항상 잘 풀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실패하게 하시고, 넘어지게 하시며, 수치를 경험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실패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은, 우리의 성공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에는 실패도, 부끄러움도 더 이상 절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 인생을 붙들고 계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 묻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만이 아니라, 삶의 방향 자체를 하나님께 맡기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매 순간 선택지를 늘어놓고 답을 기다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지 않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이끄신다는 사실이면 충분합니다”라는 신앙의 태도입니다.
사사기의 시작은 이렇게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의 삶의 지도자는 누구인가?”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의 참된 지도자이심을 믿고, 그분이 붙이시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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