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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이야기

분별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길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9. 29.

우리의 신앙생활은 결국 분별의 문제로 모아집니다. 무엇이 성령의 일인지, 무엇이 육신의 일인지, 또 무엇이 사단의 일인지 가려낼 줄 아는 것, 나아가 올바른 일과 잘못된 일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신앙의 중심입니다. 분별하지 못하면 마귀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고, 그동안 쌓아온 믿음의 수고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불행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종교 지도자들의 추락과 범죄도 결국은 이 분별력의 상실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는 각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렸다는 데 원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요일 4:1)

하나님은 모든 영들을 시험해 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또 이렇게 말씀하시죠.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마 4:7) 여기서 우리는 혼란스러워집니다. 시험하라 하시면서도 시험하지 말라 하시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성경에서
‘시험하다’라는 말은 한 가지 단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는 보통 ‘나사’(nasha)라는 히브리어가 쓰였고, 신약에서는 ‘페이라조’(peirazo)라는 헬라어가 대응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시험하다, 테스트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경우, 하나님은 절대로 시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구약에 드물게 쓰이는 또 다른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바한’(bahan)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욥기 7장 18절, 스가랴 13장 9절, 말라기 3장 10절 등에서 사용되었는데, 단순히 ‘테스트하다’가 아니라 ‘조사하다, 증명하다, 입증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말라기 3장 10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바한)…” 많은 이들이 이 말씀을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이 정말 복을 주시는지 시험해 보라”는 식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원어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그보다 훨씬 깊습니다. “내가 어떤 분인지 너희 마음으로 증명해 보라. 너희의 마음을 드러내 보라.”는 뜻입니다.

즉 십일조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입증하는 행위입니다. 십일조를 통해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인정하는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나의 중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도키마조’(dokimazo) 라는 단어가 자주 쓰입니다. 이 말은 “확증하다, 검증하다”라는 뜻으로, 단순히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가치를 드러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5장 1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여기서도 ‘도키마조’가 쓰였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확증되고 드러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분별이란 단순히 옳고 그름을 따지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고 입증하는 일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십일조도 사실 세 가지 차원으로 나뉩니다.

첫째, 레위인과 제사장과 함께 나누는 십일조(레27:30~33, 민18:21~32) 이는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임을 고백하는 행위”였습니다. 땅의 소산과 소득을 구별해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는 고백이었고, 동시에 성전에서 섬기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생계를 위한 제도였습니다.


둘째, 가족과 함께 축제에서 나누는 십일조(신12:5~19, 14:22~27) 절기 때 하나님께 나아가 온 가족이 함께 먹고 즐기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의 성찬과 애찬의 전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함께 나누는 기쁨, 공동체의 즐거움이 중심이었습니다.

셋째, 가난한 자와 나누는 십일조 (신14:28~29, 26:12~15) 매 3년마다 드려 고아, 과부, 나그네 등 사회적 약자와 나누는 십일조였습니다. 이 경우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나눔을 통해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십일조는 단순한
‘의무적 헌금’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고백이자, 공동체와 이웃을 위한 나눔의 통로였습니다.

참된 분별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성히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창고가 넘쳐 정리하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렸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대하 31:7). 그러나 그들이 복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십일조를 드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마음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별 없는 십일조, 분별 없는 헌신은 위선이 되고 율법주의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십일조, 하나님의 뜻을 확증하기 위한 삶의 분별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믿음의 열매가 됩니다.

분별이란 단순히 옳고 그름을 따지는 판단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능력이며, 나의 삶을 통해 그분의 뜻을 입증하는 행위입니다. 십일조든, 봉사든, 기도든 모든 신앙 행위가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증거하는 일이 될 때, 그 삶은 참으로 복된 신앙의 길이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기도하며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지금 행하려는 일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까?” 이 질문을 붙잡는 것이 바로 분별의 시작이자, 신앙의 중심입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에베소서 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