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어떤 사람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무릎을 꿇고, 간절히 구하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 두드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경우, 기도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원하는 것을 주시면 더 열심히 믿겠다는, 일종의 협상입니다.
철학자 자크 엘륄은 이것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회가 산출한 필요 욕구들을 만족시키는 에이전트가 되었다." 소비를 더 많이 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기도라는 뜻입니다. 쓴소리지만, 틀린 말이 아닙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쓴 책 중에 『거래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협상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세계적인 부동산 재벌이 되었다는 자서전입니다. 그런데 만약 기도가 거래라면, 우리는 트럼프에게 기도를 배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기도는 거래가 아닙니다. 성경의 기도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행위, 곧 자기부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은 이 진실을 아름답게 담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하면 원하는 것을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평강이 온다고 합니다. 이 차이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묻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먹고 사는 문제가 있고, 자녀 걱정이 있고, 건강 염려가 있습니다. 현실은 늘 우리를 염려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덧붙이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이방인이란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린 아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엄마 아빠가 있는 아이는 오늘 저녁 밥이 나올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냥 놉니다. 배가 고프면 엄마를 찾습니다. 그러나 부모 없이 거리를 떠도는 아이는 다릅니다. 그 아이에게 의식주의 염려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는 것은, 고아에서 자녀의 신분으로 옮겨진다는 뜻입니다. 염려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말은, 흔히 오해하듯 감사헌금을 먼저 드리고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어떻게 나를 붙드셨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신학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음주운전 사고로 하루아침에 어머니와 아내와 막내딸을 잃었습니다. 본인과 세 자녀는 살아남았지만, 심신이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가 그 처참한 고통의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배운 것이 있었습니다. "구속받은 시각으로 보면, 슬픔마저 천국의 성질로 변한다." 고난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완성된 천국에서 돌아보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평생 천국에서 살았다고." 이런 사람이 기도할 때 감사함으로 아뢸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아픔마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평강이라는 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입니다. 헤롯 왕이 야고보를 죽이고, 이어서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사형입니다. 그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묶인 채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는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천사가 와서 옆구리를 쳐서야 깨어났습니다. 내일이면 죽습니다. 그런데 자고 있습니다. 이것은 둔감함이 아닙니다. 세상이 설명할 수 없는 평강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빌립보의 감옥에서 발이 차꼬에 채인 채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감옥에서 훗날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그것은 고통을 모르는 사람의 낙관론이 아니었습니다. 쇠사슬 속에서 체험한 평강의 증언이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이 평강의 신학적 토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에서 완성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묻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환난도, 곤고도, 박해도, 기근도, 심지어 죽음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오는 평강은 바로 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내면에 살아 움직여,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고요함으로 우리를 채웁니다. 문제가 해결되어서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여전히 있어도, 그것보다 더 크신 분이 나와 함께 계심을 알기에 평안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무언가를 염려합니다. 염려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염려를 붙들고 혼자 싸우는 것과, 그 염려를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은 전혀 다른 삶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들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기술이 아닙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다시 기억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우리를 평강으로 이끕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 세상의 어떤 논리로도 설명되지 않는 그 고요함, 그것이 기도의 응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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