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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빌립보서 - 은혜와 평강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5.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빌립보서 1: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낸 첫 인사에는 단순한 관례 이상의 영적 깊이가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인사야말로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가의 실제 역사를 통과한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빌립 2세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도시였습니다. 로마 제국으로 넘어오면서는 로마 군인들의 식민지로 자리 잡아, 로마의 특권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고백은 “
가이사가 '주'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참된 주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세우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제국의 심장부 한가운데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복음이 심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바울의 인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 한마디는 이미 이 도시의 정신과 충돌합니다. 복음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됩니다. 주를 바꾸는 것, 그것이 은혜의 시작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믿는 것도 ‘
내 마음대로’가 아닙니다. 사도행전 16장은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바울은 처음에 아시아, 즉 지금의 터키 지역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성령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비두니아로 가려고 할 때도 “예수의 영”이 막으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복음 전하는 열심이 있으니 하나님이 그냥 길을 열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대입니다. 바울만큼 준비된 사람도 마음대로 전도할 수 없습니다. 복음의 발걸음은 하나님이 여시는 길로만 갑니다.

마침내 드로아에서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 환상을 보고 길을 틀어 빌립보로 갑니다. 바울은 그 환상을 보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하여”(행 16:10) 움직입니다. 복음 전파의 주도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있습니다.

아무 문도 열리지 않았던 도시에서, 하나님이 한 사람의 마음을 여십니다. 환상까지 주셨으니, 도착하면 문이 활짝 열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수일 동안 아무런 접촉점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 회당조차 없었습니다. 유대인 남자가 열 명도 안 되는 곳, 그만큼 이 도시는 복음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강가로 나갔을 때, 바울은 조용히 하나님을 찾는 몇몇 이방 여인들을 만납니다. 그 중에 ‘
루디아’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중요한 한 문장을 기록합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행 16:14) 이것이 빌립보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바울이 사람을 설득한 것이 아니라, 루디아가 어떤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주께서 마음을 여신 것입니다.

복음이 실제로 일어나는 순간은 인간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으로만 일어납니다. 루디아가 “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고 강권하여 바울 일행을 붙잡았을 때, 하나님은 그 집을 유럽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 교회로 세우셨습니다.

복음은 루디아의 집에서 아름답게 시작되었지만, 그 즉시 저항도 함께 일어났습니다.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이 바울을 따라 다니며 마치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말은 성령이 아닌 괴이한 방식의 진리 왜곡이었습니다.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자, 여종의 ‘
점 괘’는 사라졌고 주인들의 수익의 소망도 끊어졌습니다. 이들은 분노하여 바울과 실라를 고발합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인이라 우리의 성을 요란하게 한다.” “로마 사람이 할 수 없는 풍속을 전한다.”

복음이 들어가면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핵심은 신앙이 아닙니다. “
수익의 소망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세상의 이익과 충돌합니다. 복음은 사람의 주인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옥에 갇힙니다.

옥에 갇히면 절망해야 하는데, 바울과 실라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모든 죄수들이 듣는 큰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진으로 옥문을 열어 버리셨습니다. 쇠고랑까지 풀려버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간수는 모든 죄수들이 도망쳤다고 생각해 칼을 빼어 자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합니다. “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이 말 한마디는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간수의 영혼을 붙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그 순간 간수는 무너졌습니다. “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그 날 밤, 그는 가족 전체와 함께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의 집에 이어 두 번째 빌립보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사에서 ‘
은혜와 평강’을 말했습니다. 이 모든 역사를 기억할 때, 빌립보서 1장 2절의 인사는 단순한 형식이 아닙니다. 앗아시아 문이 닫힌 것도, 마음이 열린 것도, 귀신을 쫓아낸 것도, 매를 맞은 것도, 옥문이 열린 것도, 간수의 회심도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전부가 은혜로 시작되고 은혜로 유지되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만들어내는 가장 큰 열매는 평강입니다.

세상은 로마를 의지해 평강을 누린다고 생각했지만, 바울은 감옥에서도 찬송하는 평강을 누렸습니다. 루디아는 재산을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는 평강을 누렸습니다. 간수는 죽음의 공포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평강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인사는 경험에서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역사는 말합니다. 복음의 역사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열리는 마음은 없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평강은 없습니다. 모든 주권은 주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빌립보서 첫머리에 던진 이 한마디는, 단지 인사가 아니라 복음의 핵심입니다. “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는 이 은혜를 떠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며, 이 평강이 없으면 아무 것도 누릴 수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