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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에베소서 - 창세전에 나를 부르신 하나님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에베소서 1:4~5)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
저는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분명히 맞습니다. 우리의 경험 속에서는 ‘믿음’이 구원의 문을 여는 손잡이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묵상해 보면, 그 말은 맞으면서도 동시에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 나는 믿게 되었을까? 왜 내 옆에 있는 누군가는 믿지 않는데, 나는 믿음이 생겼을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질문은 잘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생긴 이유까지 들어가면 금세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질문을 피해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면으로 대답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4~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바울에게 구원은 ‘
내가 믿었기 때문’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나를 선택하신 데에서 출발합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아담이 숨도 쉬기 전에, 심지어 ‘빛이 있으라’는 말씀이 나오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나를 마음에 품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늘 인과율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결과가 온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런 말들이 우리 생각의 깊은 뿌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도 자연스럽게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 나는 꽤 괜찮은 선택을 한 사람이다.

하지만 성경은 이런 모든 계산을 뒤엎습니다. 복음은 ‘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복을 주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완전히 무능력했을 때,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죽어 있었을 때 하나님 쪽에서 다가오신 은혜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죽어 있었고,
죽은 자는 믿을 수도, 찾을 수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믿게 되었습니까? 이 질문 앞에서 바울은 단호합니다. “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첫 번째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 번째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세전에 택하셨다.” 이 사실을 처음 들으면 부담스럽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도하셨다는 선언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내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이 자존심과 잘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차갑고 무서운 숙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 진리는 하나님이 나를 오래전부터 사랑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하기도 전에, 내가 그분을 사랑하지도 않을 것을 이미 아셨음에도 하나님은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선택은 “
너는 나의 아들이다. 너는 나의 딸이다. 나는 너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영원한 선언입니다.

역사는 인간의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의 업적, 기술의 발전, 전쟁, 혁명… 모든 것들이 인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를 다르게 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손이 사백 년 동안 이방 땅에서 종살이 할 것이다.”(창 15:13)

모세가 태어나기도 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있기 전, 해가 뜨고 지는 수천 번의 순간보다 앞서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의 운명을 그리셨습니다. 이 말은 인간이 꼭두각시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 판단, 선택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을 관통하여 하나님의 큰 경륜이 흐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작은 배를 모는 선장 같지만, 그 바다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바다의 목적지는 이미 창세전에 정해져 있었습니다.

왜 ‘
나는 믿어서 구원받았다’는 말이 완전한 답이 아닌가? 우리가 경험하는 구원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복음을 듣는다. 마음이 뜨거워진다. 믿음이 생긴다. 구원받는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순서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하셨다. 때가 되자 성령이 우리를 깨우셨다. 그 깨우심이 믿음을 낳았다. 그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에 들어왔다." 경험의 관점에서는 우리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본질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먼저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하나님은 억지로 마지못해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기쁘신 뜻으로, 기쁨에 겨워, 마음이 움직여 우리를 아들 삼으셨습니다. 얼마나 따뜻한 진리입니까?

이 교리는 성경에서 가장 높은 진리이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위로를 줍니다. 내가 어려움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잊으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의 영원한 계획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붙잡으십니다. 내가 붙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연약할 때에도 구원은 내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달을 때 바울처럼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찬송하리로다!”(엡 1:3) 이 찬송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진리의 깨달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입니다. 구원이 내 손에서 온 것이 아님을 알 때, 하나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셨음을 알 때,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왜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까? 내가 무엇을 잘해서? 내가 남들보다 더 진지해서? 내가 더 착하고 더 열심이어서? 아닙니다. 성경은 단순하고도 확실하게 말합니다. “
창세전에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분의 손에 있으며 마지막 날까지 그분의 은혜로 완성됩니다.

이 은혜의 깊이를 묵상할 때 우리의 마음은 더 이상 흔들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연히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영원한 사랑의 마음 속에서 선택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