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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이야기

사람은 원래 짜증 난다는 사실 받아들이기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0. 14.

우리는 매일 사람과 부딪히며 살아갑니다. 가족, 직장 동료, 상사, 친구, 심지어 낯선 사람들까지 부딪히며 살아갑니다. 그 중에는 분명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도 다양합니다. 불합리하게 굴고, 말투가 날카롭고, 자기중심적이거나, 사소한 일에 예민한 사람들 맏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외칩니다. “도대체 왜 저래."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짜증 나는 사람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인간관계의 많은 오해가 풀립니다. 사람은 원래 짜증 나는 존재라는 것,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겸손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히 나와 잘 맞는 사람’은 없습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마찰’을 겪습니다. 동료의 무례함, 상사의 독선, 부하 직원의 무능함, 친구의 무심함, 가족의 예민함…. 이 모든 관계의 불편함 속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첫 번째 진리는 이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짜증 나는 존재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늘 실망하게 됩니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라는 생각이 쌓일수록 분노는 깊어지고, 결국 내 평안이 무너집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권력과 전쟁,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았던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이렇게 다짐했다고 합니다.
“오늘 나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 오만한 사람, 사기꾼, 질투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결함을 미리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서 말했습니다. “이들은 선과 악을 몰라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며, 그 누구도 나를 추악한 일에 끌어들일 수 없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짜증 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먼저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는 과연 완전한가?” “내 안에는 그와 다를 바 없는 결점이 없을까?” 이 질문 하나가 마음을 식히는 지혜의 문을 엽니다.

우리가 화가 날 때, 대체로
‘상대가 틀렸다’는 확신이 강합니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군가를 판단할 자격을 갖추려면 그전에 아주 많은 것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상황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어떤 상처를 안고 있는지, 어떤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침묵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반응일 때가 많습니다.
“한 발짝 물러서라.” 그는 그렇게 조언합니다. “침묵은 필사적으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분노가 아니라 이성으로, 짜증이 아니라 공감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야고보서 1:20) 짜증과 분노는 결국 내 안의 평화를 깨뜨리고, 하나님이 내 마음에 세우신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도 조롱하는 자들에게 침묵하셨습니다. 그분의 침묵은 굴복이 아니라 완전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공격한 자들을 향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결국 예수님의 평정은 인간의 분노를 넘어선 하늘의 평화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짜증이 날 때, 그 감정 속에는 사실 내 마음의 상처가 숨어 있습니다. 상대의 말보다 더 아픈 것은
‘내 자존심이 건드려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짜증은 나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그럴 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이 사람을 통해 제 안의 교만과 조급함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순간, 짜증은 더 이상 내 감정을 망가뜨리는 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안의 ‘미성숙’을 다듬으시는 연단의 불이 됩니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상황도, 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짜증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이렇게 기억합시다.
“사람은 원래 짜증 나는 존재다. 그러나 그 짜증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다듬고 계신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우리가 화내는 대신 한발 물러서서 생각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짜증 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로마서 12:18)

“온유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언 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