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한다고 가정해보십시오. 사랑한다는 말이 결코 가벼운 감정이나 단순한 호감의 표현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이 바뀌는 사건이라면 말입니다. 그 사람과는 이미 깊은 상태적 연합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이 닿았고, 진심이 오갔습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장막은 이 연합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육체로, 삶으로, 상황으로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데, 이 땅 위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은 동일한 믿음의 언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유일한 사랑, 하늘로부터 온 그 사랑, 그것 하나뿐입니다. 인간의 사랑, 세상의 사랑, 감정과 욕망의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사랑'은 사실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도용한 채, 내 중심의 만족과 충족을 추구하는 왜곡된 본능일 뿐입니다. 우리는 원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그것을 온전히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늘 고통스럽고, 늘 결핍이며, 늘 애틋한 것입니다.
죄는 사랑을 왜곡시켰고, 하나님과의 연합을 끊어버렸습니다. 그 처음의 사건,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이야기로 우리는 돌아갑니다. 선악과의 달콤한 맛은 단지 한 입 베어 문 과실의 맛이 아닙니다. 나를 완전히 바꾸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전존재적 전복의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그 자리에 나를 앉히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내가 선과 악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이 곧 옳은 것이 되었고, 내가 원하는 것이 곧 진리가 되었습니다.
그 맛을 정말로 알고 있는 사람만이 죄가 무엇인지 압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는 사람은 이 선악과의 맛을 압니다. 거기서부터 구원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이라 부르시기 위해 징계하시고, 환난 가운데 두십니다. 그래서 고난이 곧 은혜입니다. 징계가 곧 사랑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도록 부름받은 자에게는 이 고난과 징계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것은 사랑의 증거이자, 생명나무를 향해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다릅니다. 징계도 고난도 없는 이들은 선악과의 치명성을 알지 못합니다. 생명나무의 소망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살아가고, 죽을 뿐입니다. 사랑도 고통도 모른 채로 말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고통은 은혜입니다. 절망은 건짐입니다. 우리는 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붙들린 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픕니다. 너무나 아픕니다. 감히 “나는요?”라고 묻고 싶지만, 입을 열지 못합니다. 길을 알고 있고, 진리를 알고 있고, 생명을 알지만 그 길을 혼자 걸어가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분이 그 길을 먼저 지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동행하고 계십니다.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상황적 연합이 배제된 관계 그러나 거기에도 사랑이 존재합니다. 아니, 그 안에야말로 가장 완전한 사랑이 숨 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픔, 기다림, 이별, 애틋함, 불가능함, 그 모든 것에 그분이 함께하시며, 사랑을 완전하게 하십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완전한 사랑이셨습니다.
가슴으로 스며드는 바람처럼 이 아픔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잠시입니다. 우리는 이 유한의 부스러기들 너머, 영원의 실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생명나무로 향하는 약속된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감사하십시오. 더욱 사랑하십시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 선악과의 달콤함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그 치명적인 유혹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생명나무의 실체를 사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나락이, 그 절망이 곧 구원의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이 길은 쉽지 않습니다. 삶의 현실은 반복되는 추락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힘을 내보라’는 유혹이 더 뚜렷하게 들릴 것입니다. 세상이 내 가치를 알아주고, 내 존재를 인정해주던 그 자리들이 유혹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그 죄의 자리가 마치 황금 보좌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처럼, 불현듯 우리를 끌어올리십니다. 갑작스럽고 강력하게 우리를 죄의 진창에서 건지십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압니다. 모든 것이 허상이었고, 내 주체는 결국 쓰레기 더미 속에서 썩어가던 것이었으며, 그 속에서 유일하게 솟아오르는 것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시작된 사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주님, 당신의 사랑을 알고 싶습니다. 달콤했지만 치명적이었던 그 죄의 유혹을 지나 이제는 생명나무의 소망을 품고 살고 싶습니다. 고난이 은혜임을 믿게 하시고 고통이 동행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나를 부수시는 손길이 사랑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의 완전한 사랑만이 내 안에서 피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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